[Law&Biz] 똑같은 사건, 다른 판결
“똑같은 사건인데 재판부에 따라 회계법인 책임을 다르게 보니….”

최근 국민연금 등 3대 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 상장사인 한솔신텍과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을 대리했던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판결 결과를 놓고 이같이 말했다. 원고들 모두 신텍의 분식회계로 인해 투자 손실을 봐 소송을 냈는데 두 재판부가 회계법인의 배상 책임 비중을 다르게 봐서 의뢰인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얘기였다.

앞서 신텍은 2008~2011년 분식회계로 매년 수백억원대 매출을 과다계상했으나 삼일회계법인 측은 이 기간 꾸준히 ‘적정’ 의견을 냈고, 기관투자가들은 큰 투자 손실을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2부(부장판사 이인규)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 연금과 우정사업본부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이 “회계법인의 감사를 믿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며 모두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김종문)도 같은 취지로 국민연금공단이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두 재판부가 본 회계법인의 책임 비중은 달랐다. 중앙지법은 전체 손해 인정금액 중 회사 측 책임을 70%, 회계법인 측 책임을 50%로 책정했고, 동부지법은 회사와 회계법인에 각각 손해금액의 60%와 20%의 책임을 물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소송을 벌였는데 회계법인에서 받아낼 수 있는 금액은 서로 달라진 셈이다.

2008년 서울고법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공동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 범위는 가해자 전원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평가해 동일하게 매겨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대우 측과 안진회계법인 측에 손해액의 60%를 동일하게 부담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는 재판부 성향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나는 일이 많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상고법원 설치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하급심 강화’가 선결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같은 사안을 두고도 재판부별로 판단이 다르다면 상급법원에 항소하지 않을 원고가 있을까. ‘고무줄 판결’로 인한 혼란이 없도록 법원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정소람 법조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