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선의 弱者 슬픈 그대 이름은 지·여·인
“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학생인데, 친구들과 함께 채용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왔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 강당에서 열린 효성그룹 채용설명회에서 만난 A씨는 “대기업 채용설명회가 서울권 대학에서만 몰려 열리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이날 채용설명회에선 지방대 및 수도권대 출신 취업준비생들의 질문이 유독 많았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될 만큼 힘든 대기업 취업 전선엔 자칭 ‘서러운 약자(弱者)’들이 적지 않다. 지방대와 인문계 출신, 여대생이 그들이다. 공정한 게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좁은 채용의 문을 뚫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지방대생들이 새벽밥을 먹고 KTX를 타고 서울권 대학에서 열리는 채용설명회에 참석하는 건 기본이다. 서울권 비(非)명문대생들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몰리는 대기업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해 채용설명회 일정을 챙겨야 한다.

◆지방대 채용설명회는 대부분 中企

취업 전선의 弱者 슬픈 그대 이름은 지·여·인
영남대에선 지난해 20여건의 채용설명회가 열렸으나 올해는 10여건에 그쳤다. 그나마 절반은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이 적은 지역 소재 중소기업들이었다. 경남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9월 한 달간 채용설명회를 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인근에 있는 삼성중공업을 포함해 4곳에 불과했다.

호남권 대학의 취업준비생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더하다. 전북 익산에 있는 원광대에선 9월에 KT 한 곳만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군산대는 아예 한 곳도 없었다. 이 대학 취업센터 관계자는 “채용설명회를 열려는 기업을 갈수록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서울권 대학도 비슷하다. 중·하위권대 학생들은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명문대 채용설명회를 찾아다닌다. 명문대 채용설명회에선 ‘다른 대학에선 공개하지 않는 알짜 정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동일한 자료로 설명하는 만큼 정보차별은 없다”고 했다. 다만 “많은 질문이 나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고 귀띔했다.

◆인문계-이공계 채용 비율 2 대 8

삼성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의 85%를 이공계로 채웠다. 인문계 출신의 입사경쟁률은 75 대 1에 달해 이공계 출신(8.8 대 1)의 아홉 배 수준이었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 전자계열 3사의 인문계와 이공계 비율도 2 대 8 수준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신입사원들을 이공계 위주로 채용하면서 인문계 출신들은 유통과 금융권 등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신입사원의 95%가 인문계 출신이었다. 올 하반기 지원자는 9000여명에 달해 경쟁률만 100 대 1을 넘고 있다.

30명을 뽑는 현대카드에도 9000여명이 몰렸고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은 3000여명이 지원했다. 이랜드에는 3만4000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식 직무는 지원자가 187%나 급증했다. 인문계 출신이 많은 여성 취업준비생들은 2중, 3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여성 지원자들은 마케팅, 인사 등의 한정된 직무를 선호하다보니 취업 경쟁이 남자 지원자들보다 훨씬 치열하기 일쑤다.

또 기업들은 영업이 가능한 남성 지원자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채용시장에서 최고의 스펙은 ‘남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 대기업 채용담당자는 “마케팅 직무로 신입사원을 뽑아도 대부분 영업을 시키기 때문에 남성 지원자를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민욱 사람인 홍보팀장은 “여성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지만 모든 기업에서 여성 신입사원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취업문을 뚫을 수 있는 다양한 채용전형을 꼼꼼히 따져보고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뿐 아니라 지방이전 공기업, 알짜 중소기업을 찾아서 지원하면 유리하다”고 전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