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렁 > 1990년대 젊은이들의 인기를 모았던 서울 신림동 순대타운은 요즘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 예전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 썰렁 > 1990년대 젊은이들의 인기를 모았던 서울 신림동 순대타운은 요즘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 예전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1. 지난달 25일 서울 신림동 양지순대타운. 점심시간인데도 썰렁한 분위기였다. 업소당 10개의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A씨는 “갈수록 손님이 줄고 있다”며 “그나마 오랜 단골손님들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대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거리. 약 530m에 이르는 곱창골목에 길게 늘어선 50여개 가게마다 곱창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1인분 가격은 4000원. B가게 사장은 “저렴한 가격에 완벽한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페인트칠도 못하게 하는 이웃가게

OO골목, △△촌 등으로 불리는 일명 ‘먹자골목’에도 명암이 있다. 비슷한 식당끼리 한곳에 모여 한때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골목도 어느새 변해버린 사람들의 입맛에 적응하지 못하면 금세 쇠락한다.

신림동 순대타운은 1970년대 이후 주변 시장에서 순대볶음을 팔던 상인들이 1990년대 초 만든 순대촌(村)이다. 양지순대타운과 민속순대타운 등 두 개 건물 3~4개층에서 60여개 업소가 백순대볶음 등 같은 메뉴를 팔고 있다. 이곳은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권리금이 1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지만 지금은 곳곳에 비어있는 점포들이 눈에 띈다.

상인 C씨는 “예전에 손님이 많을 땐 하루에 1000만원어치를 팔았던 적도 있었다”며 “지금은 주말에도 하루 매출 100만원을 올리기가 버겁다”고 전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해 최근 주말에 순대촌을 찾았다는 회사원 K씨(40)는 “입맛이 변해서 그런 건지 옛날 맛이 안난다”며 “새 메뉴를 개발하고 시설도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침체는 빠르게 달라지는 고객들의 입맛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가게 벽면에 붙어있는 메뉴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D식당 주인은 “매장에 페인트칠을 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된다”며 “옆 가게에서 공사하면 내 가게 영업에도 지장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들 불편해 한다” 고 털어놨다.

실제 최근 관악구청이 순대타운 내 점포 5곳을 모아 서울시의 브랜드 컨설팅서비스인 ‘시장닥터’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지만 두 곳만이 참여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컨설팅 지원이 무산되기도 했다.

난투극에 소송전까지…

서울 잠원동 간장게장골목은 무한경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프로간장게장’이라고 불리는 원조 식당과 후발 식당 간 상호명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일어나면서 상인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2012년에는 식당 직원들이 손님을 서로 데려가려고 호객경쟁을 하다가 집단 난투극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30여년 전부터 하나둘씩 간장게장집들이 생겨난 이곳은 한때 20여개 점포로 세를 불렸지만 지금은 10개 정도만 남아 있다. 문을 연 지 15년 됐다는 E식당 주인은 “같이 도와가며 영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렇게까지 싸워서야…”라며 혀를 끌끌 찼다.
< 북적 >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의 한 가게에서 여학생들이 모여 앉아 곱창을 먹고 있다. 주말이면 8000명이 이 골목을 찾는다. 대구=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 북적 >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의 한 가게에서 여학생들이 모여 앉아 곱창을 먹고 있다. 주말이면 8000명이 이 골목을 찾는다. 대구=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공멸 위기감이 만들어낸 협력

반면 대구의 안지랑 곱창거리는 점주 간 상호협력과 신뢰를 통해 지역상권 전체를 살린 케이스다. 2006년 13개에 불과했던 곱창가게는 51개로 4배가량 늘었고, 주말엔 하루 8000명이 찾을 정도로 북적거린다. 한 달에 이곳에서 소비하는 곱창이 20t에 육박할 정도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 이후 퇴직자들이 하나둘씩 모여 곱창가게를 차리면서 안지랑 곱창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비슷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2000년 중반 이후 일부는 문을 닫기도 했다. 이대로 가면 공멸뿐이라는 위기감에 상인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토박이인 우만환 씨(66)가 상인회장을 맡았다.

공동구매부터 시작했다. 우 회장은 “상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보름 이상 설득해 곱창요리의 주재료인 곱창, 주류, 음료수를 공동구매하기로 합의했다”며 “그 결과 구매단가를 20% 이상 떨어뜨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품 위생도 크게 개선했다. 인근 공장에서 깨끗하게 손질해 진공포장한 곱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초기 협력이 성과를 내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상인들은 곱창가게 특성상 연탄 먼지가 거리에 많이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주일에 2~3회씩 대대적인 물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호객행위도 자제하기로 했다. 판매대금에서 일부를 뗀 기금으로 인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지역사회 기부활동도 늘려가고 있다.

서기열/조미현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