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것…역경 앞에 굴복하지 마세요"
“역경 앞에 굴복하지 마세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국군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강원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12사단 소속 장병을 대상으로 열린 삼성그룹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 <전방부대편>’에서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서 소장은 가발공장 여공으로 출발해 미군 복무를 거쳐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희망전도사’로 활약하게 된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소개했다.

그는 1948년 가난한 술 판매업자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에 지칠 무렵인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크면 박사가 되라”는 말을 듣고 ‘박사=성공’이라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이 생각은 그가 언제나 부여잡고 있던 희망의 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집이나 가라”는 집안 말을 뒤로하고 고교 졸업 후 가발공장에 취직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 끝없이 좌절할 때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1971년 단돈 100달러만 쥐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지옥 같은 삶으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오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서툰 영어로 가정부, 한식당 웨이트리스를 전전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했다. 삶은 조금씩 나아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이제 ‘역경이 걷히나’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악몽을 만나게 됐다. 매일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찾아간 곳은 군대였다.

1976년 미 육군 사병으로 자원 입대한 그는 동양인, 여자라는 핸디캡으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도전했고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했다. 1981년 장교로 임관, 소령까지 진급한 뒤 1986년 예편했다. 군 복무 중에도 공부의 끈은 놓지 않았다. ‘박사’라는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해 1990년 나이 마흔둘에 하버드대 국제외교학·동아시아언어학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2006년 박사학위를 땄다.

서 소장은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나 자신을 가장 큰 동지로 여겼고 ‘너는 큰 인물이 돼 수많은 힘든 사람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말했다. 또 “내 앞을 가로막은 벽은 결국 내가 열어야 할 문이다. 힘들다고 피하지 말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해 장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다른 연사인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군대 동료나 상하 장병 간 갈등의 원인은 공감능력 부족과 관계 단절에 있다”며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여유가 사라져 관계가 어긋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스트레스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이번 열정락서에서는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료 장병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열정히어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극복하고 성악을 배워 군악병이 된 권오찬 상병, 미국 시민권 취득을 포기하고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박대희 병장 등의 사연이 소개됐다. 열정락서는 2011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전국에 걸쳐 총 76회, 26만여명이 참여한 토크콘서트다. 다음 열정락서는 28일 대전에서 특성화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릴 예정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