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영업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자영업 위기를 장년층의 고용 불안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나무랄 데 없다. 정부는 이에 따라 장년층 고용 안정부터, 자영업의 창업·성장·퇴로단계까지 생애주기에 걸쳐 포괄적인 지원대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대책은 엉뚱한 길로 빠졌다.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차인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보호하는 다양한 대책들은 결과적으로 상가를 파괴하고 시장을 황폐화로 몰아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상가 권리금 회수를 지원하기 위해 임대인(건물주)의 손해배상책임과 함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는 것 등이 모두 그런 조치들이다.

기존상인 보호 : 신규 진입자에겐 장애물로

[사설] 자영업 대책, 취지 좋지만 시장進化 막을 수도
정부의 고심을 모르지 않는다. 자영업 문제는 정부 말마따나 구조적이다. 진입이 쉬워 과당경쟁이 만성화된 탓에 퇴출도 많다. 한 해 평균 60만개 업소가 새로 생기고 58만개가 문을 닫았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그런데도 자영업자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는 지난 8월 말 580만명으로 올 들어 33만명이나 또 증가했다. 가족 종사자까지 합친 자영업자 비중이 27.4%로 OECD 평균 16.5%를 크게 웃돈다. 더구나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권리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시장상황, 업황, 환경변화에 따라 널뛰기하는 것이 권리금이다. 권리금을 상수로 만드는 순간 신규 진입자에겐 진입장벽이 된다. 더구나 임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동반성장을 이유로 100m 200m 300m 등으로 거리를 제한한 결과, 기존 점포의 권리금만 올려놓고 말았던 일이 엊그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려고 대기업이 못 들어오게 사업영역에 금을 그었더니 외국기업만 살 판이 됐고, 대형마트를 규제해도 전통시장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자영업을 살리자는 것은 한경도 깊은 관심이 있어 특별기획 기사까지 연재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상가와 상권의 진화를 막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곳이다. 이번 자영업 대책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권리금 : 소유권 침해하고 상권개발 저해한다

법무부가 어제 경제장관회의에서 내놓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기존 시장 질서를 파괴할 수도 있다. 권리금은 임차인의 영업활동 결과에 따라 형성된 유무형의 가치다. 시설투자는 물론 단골 고객 확보, 상인의 땀까지 포함하는 무형의 재산적 가치이기 때문에 업황에 따라 그리고 상인들 간의 서로 다른 평가 결과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시장가치다. 물론 소유권과 영업권의 조화라는 면에서도 권리금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시장을 진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시장을 파괴하거나 불안하게 만들어 갈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인은 현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의무화하는 항목만 보더라도 근대 민법의 대원칙인 사적자치의 원칙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임차 계약을 종료시킬 수 없도록 한 것은 그 기간 동안 새 건물주의 그 어떤 발전 계획도 중단시키게 된다.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권리금 산정기준도 애매하다. 권리금은 업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것이고 상인에 따라 그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또 상인들이 사업을 벌일 때 고려해야 하는 가장 큰 위험부담이기도 하다. 이것을 제3자가 수치화하고 계량화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 가치야말로 상인들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 결코 고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임대료 상승효과를 가져와 임차인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권리금에 대한 배상 혹은 보상의무를 임대인이 지게 된다면 이는 다시 임대료에 전가된다. 상인이 축적한 권리와 가치를 건물주가 가로채는 경우가 문제라고는 하더라도 이를 법률적 권리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 법안이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는 자영업자 120만명의 권리금이 보호되고 영업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오히려 자영업자들을 더욱 궁지에 내몰 수도 있다.

상권관리기구 : ‘골목 완장’으로 변질될 가능성

이번 자영업자 지원 대책 가운데 상권관리제는 상권발전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청은 낙후된 옛도심 상권을 ‘특화거리’ 등으로 새단장하겠다는 것인데 그 정도라면 지원대책을 내걸고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게 옳다.

중기청은 이번 계획이 ‘민간주도의 상권관리 운영’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렇게 간단치 않다. 계획대로라면 옛도심에 입주해 있는 소상공인과 소유주 등이 ‘상권관리기구’를 구성한 뒤 상권개발 계획을 제출하면 지자체가 이를 검토해 ‘상권관리구역’을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년 중에 가칭 상권관리법도 만든다는 계획이다.

분명한 것은 상권이 진화하거나 쇠퇴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객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주차장이 불편해서일 수도 있고, 가까운 곳에 더 좋은 시장이 생겨서일 수도 있다. 이런 진단을 생략한 채 상권관리구역으로 지정한다고, 그것도 기존 업자들에게 유사행정 권한까지 맡기는 구도에서 상권이 활성화되리란 보장이 없다.

상권관리기구라는 게 새로운 ‘완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입주자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상가번영회 가운데도 일부에선 조폭들이 개입해 이권단체화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다. 상권관리기구가 ‘자율적’으로 추진토록 하겠다는 상권활성화 사업의 예시를 보면 구청 공무원보다 더한 권력이 될 수도 있다. 상권관리기구는 입점 제한 및 입점 유치 업종·업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여기다 상권과 관련된 디자인 지침도 이들이 정하고 가로조명, 간판디자인, 테라스 설치 등도 이들이 정하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 축제개최, 상권별 스토리 개발, 홈페이지 개설 등 홍보 일도 한다지만 사실상 구청을 대신해 규제하는 유사행정기구가 등장하는 것이다. 자영업 신규 참여자들에겐 새로운 행정관청이요 기존 상인들의 권력기구로 작용하게 된다. 신당동 떡볶이골목, 장충동 족발거리는 상인들이 스스로 몰려와 형성된 것이지 정부가 계획해 만든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