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를 빌려 자영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권리금 회수의 불확실성과 건물주의 월세 인상 가능성 등으로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미근동의 한 아파트 상가.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점포를 빌려 자영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권리금 회수의 불확실성과 건물주의 월세 인상 가능성 등으로 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미근동의 한 아파트 상가.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권리금에 '인질'로 잡힌 상인…재계약 거부·월세 인상에 속수무책
“5년 동안 월세 한 번 밀린 적이 없는데 건물 주인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가게를 그만두면 생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서울 서교동 홍익대 주변에서 닭갈비집을 하는 진모씨(66)의 낯빛은 무척 어두웠다. 수차례 간청에도 가게를 비워달라는 건물주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2009년 전 점포주에게 1억2000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이 식당을 시작했다. 홍대에서 외진 구역에 있었지만 매출은 비교적 괜찮았다. 입소문도 제법 났다.

“장사할 만하면 나가라니…”

그런데 지난 2월 건물주가 뚜렷한 이유 없이 계약 만기일(2014년 8월)에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권리금을 포기하는 대신 이사비용 명목으로 2000만원을 보태주겠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권리금을 날려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건물주는 계약기간이 다섯 달이나 남은 지난 3월 일찌감치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진씨는 현행 법령상 자신이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어쩔 도리가 없다. “외아들이 현재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어서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습니다. 법정에서 패소해 강제집행을 당하더라도 그때까지는 버틸 생각입니다.” 그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굴레는 건물주와의 갈등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잘되는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는 재앙 그 자체다. 건물주와 임차 상인은 통상 2년마다 재계약을 한다. 상권이 좋은 곳은 1년마다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가게 주인이 영업을 너무 짧게 하고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 영업보장 기간을 5년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건물주가 칼자루를 쥐게 된다. 건물주의 재산권도 보장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홍대 등 주요 상권에선 계약 갱신을 할 때마다 일부러 월세를 대폭 인상하는 경우가 많다. 세입자가 그동안 쏟아부은 시설 투자비와 권리금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충무로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던 박모씨(48)는 2011년 보증금 3000만원, 월세 550만원에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2년 경매를 통해 이 건물을 산 주인이 월세 80만원을 추가로 요구하자 건물을 비워줬다. 박씨는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합해 2억5000만원 정도 들어갔지만 포기했다”며 “건물주가 요구하는 월세를 내고 나면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법적 보호망 허술하다

앞서 박씨의 건물주가 월세를 크게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상가가 일정 규모 이상이면 월세 인상률 상한선(연 9%)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법 규정 때문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을 기준으로 세입자에 대한 보호 범위를 구분하고 있다. 환산보증금이 일정액(서울 4억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3억원, 광역시 2억4000만원)을 넘게 되면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는 데 제한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김형길 홍대상인회장은 “홍대에서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인 가게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서울 강남과 가로수길 등 주요 상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주요 상권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얘기다.

건물주와 임차 상인의 갈등은 전국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인천 용현동에서 닭갈비집을 하는 이모씨(65)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금융회사를 퇴직한 후 2002년 가게를 차렸다. 처음엔 건물주와의 관계가 원만하고 장사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새 건물주가 나가달라고 요구하면서 7월 명도소송을 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씨는 “1층 점포를 내쫓고 새 세입자가 오면 건물주가 바닥권리금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며 “바닥권리금만 해도 1억원이 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 바닥권리금

상가 위치와 영업상의 이점 등에 대한 대가로 주고받는 권리금의 일종으로 ‘지역권리금’이라고도 한다. 원래 건물주와는 관련 없는 돈이지만 기존 세입자가 없는 상태에서 건물주가 보증금과 월세 외에 관행적으로 챙기는 돈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