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일본 '악어의 입'을 닮아간다
정부가 확정한 내년 예산안을 슈퍼예산이라고 부른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린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복지예산의 급증이다. 공식적인 복지예산 비중이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내년 예산 376조원 가운데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이 115조5000억원으로 30.7%다. 반값등록금을 뒷받침하는 국가장학금까지 합치면 거의 120조원으로 32%나 된다. 복지 예산이 100조원에 육박해 야단이었던 게 재작년이었다. 불과 2년 만에 23%나 늘었다. 증가 속도가 무섭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벌써 복지 디폴트까지 거론한다. 자업자득이지만 곤궁한 것은 사실이다. 기초연금, 영·유아보육료 등 5대 복지사업에만 지자체가 매년 전체 재원의 28.8%인 30조8000여억원을 부담하는 상황까지 왔다. 정부가 담뱃세, 지방세를 올리려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일 것이다.

복지지출 급증에 둔감

물론 증세 논란이 어김없이 벌어진다. 정부는 증세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데도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정부가 증세 안 한다는 공약을 깨고 서민증세를 했다고 공격한다. 고소득층 세금과 법인세를 올리라는 부자증세 타령이 뒤를 잇는 것도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수가 외국보다 낮다고 말하면서도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이 32.7%(2012년 납세실적 기준)나 되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복지비용 둔감증이다. 복지지출 급증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부나 정부를 공격하는 측이나 똑같다. 이미 과분해진 복지를 어떻게할지 근원적인 문제 제기가 없다. 특히 처음 복지공약을 꺼내 이 지경에까지 오게 만든 여야 정치권은 반성하는 기미도 안 보인다.

복지는 이미 거대한 리스크가 돼 버렸다. 적자국채가 계속 늘어난다. 세출이 세수를 웃도는 탓이다. 적자국채 신규발행액이 2013년 24조5000억원, 2014년 27조7000억원에서 내년에는 33조1000억원으로 늘어 금융위기 때인 2009년(35조원) 이후 최대다. 기획재정부는 적자국채 누적액이 현 정부 임기 말인 2017년엔 262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해 세수보다 많다. 그나마 세수가 2014~2018년 연평균 5.9%씩 늘어날 것이란 낙관론에 근거한 전망이다. 그러나 세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목표치에 8조원 이상 모자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적자국채 급증은 국가 리스크

몇 년 전 일본 정부의 경고를 떠올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박재완 기재부 장관 방일 때 일본 재무성 관료가 거론했던 그 ‘악어의 입’이다. 일본이 1973년 복지원년을 선포한 이후 복지를 계속 확대한 결과 세출은 급증하고 세입은 줄어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는 경고였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이 커져 있었다며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마라는 게 일본의 충고였다.

그러나 한국은 그대로 일본을 따라가는 중이다. 적자국채 급증은 빚을 내서 복지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재부는 벌써 이번 정부에선 균형재정을 포기했다. 물론 다음 정부에 가서 나아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일본처럼 ‘악어의 입’이 벌어지면 결말은 뻔하다. 포퓰리즘 국가들의 행로가 다 그랬다. 찬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뜨거워진다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