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재 에넥스 회장, 부엌가구 40년…'주방 혁명' 지휘
에넥스는 ‘공간을 아름답게, 사람을 편안하게’라는 가치로 한국 부엌가구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는 박유재 에넥스 회장(사진)의 꿈과 열정,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간으로 고객들의 행복을 이끌어낸다는 한결같은 박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에넥스를 위기에 강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박 회장은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이런 박 회장의 마음가짐은 에넥스를 40여년 넘도록 가구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창조 경영으로 부엌의 혁명을

박 회장은 국내 최초로 입식 부엌을 도입했다. 지금은 익숙하고 친숙한 주방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국내에는 재래식 부엌이 주를 이뤘다. 싱크대를 비롯해 조리, 위생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국의 주부들이 불편한 재래식 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외국의 입식 부엌을 국내에 도입해 주부들의 가사 노동 강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했다.

새로운 것은 반발을 사게 마련이다. 그래도 박 회장의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이 부엌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박 회장의 창업 이념에서도 이 같은 의지가 잘 드러난다. 여성의 가사 노동 해방과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가 바로 창업 이념이다. 입식 부엌 도입으로 주부들이 허리를 펴고 일할 수 있게 됐다. 가사 노동에서 오는 피로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엌의 변화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으로 직결된다. 곧 사회 행복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가사 노동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여성들은 사회로 진출했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국가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됐다. 부엌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혼이 담긴 국민 싱크대

박 회장의 어린 시절 꿈은 과학자였다. 그래서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무역과 경영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경영인으로서 꿈을 꾸게 됐다. 그는 1961년 무역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 우수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유통시켰다. 그는 탁월한 사업 수완과 안목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잘나가던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사업 방향을 바꾼 계기는 ‘자신의 가치와 혼을 담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박 회장의 욕심은 품질 좋은 제품으로 연결됐다. 그가 세운 ‘오리표 싱크’는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업적과 신기술을 선보였다. 국내 최초 싱크대 KS마크 획득, 공정 자동화 설비, 이음새 없는 상판 시스템 개발과 녹이 생기지 않는 스테인리스 기술 보유 등이다. 오리표 싱크는 국민 싱크대로 성장해 높은 판매 실적과 인기를 얻었다.

그는 항상 가치 창조 경영을 강조한다. 가격 이상의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면 고객은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기업은 이윤과 보람을 챙긴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 정신이다. 도전과 혁신이 없으면 기술은 정체된다. 경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박 회장이 추구하는 기업가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위기에 빛을 발하는 경영 원칙

박 회장은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1980~1990년대 오리표 싱크로 국내 싱크대의 대명사로 군림했으며, 1992년에는 에넥스로 회사명을 바꿨다. 업계 최초로 컬러 부엌을 선보이면서 또 한번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기술 워터본(Water Bone)도 국내 최초로 탄생시켰다. 친환경 기업으로 이름을 더욱 알렸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오일 쇼크, 노조의 장기 파업, 외환위기, 건설경기 침체 등 다양한 위기의 순간을 겪었다. 그때마다 그는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 오일 쇼크 이후 불안한 국내 정세로 인해 경기는 혼란을 겪었다. 경제성장률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보였다. 그는 기존에 납품받아 판매하던 캐비닛을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생산시설을 늘렸고, 매출은 증가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했다.

2011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 정상화를 위해 100억원가량의 개인 재산을 증여했다. 이를 발판으로 회사는 빠르게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다음해 바로 흑자 전환했다. 업계에서는 창업주로서 역할과 책임을 높게 평가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