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 日 거장의 창의성과 韓 배우의 에너지 '융합'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겠다. 샴쌍둥이 언니 수라가 이제는 ‘홀로’ 슬픔과 외로움이 배인 절규의 소리를 지르며 120분간의 극이 끝나는 순간 벅찬 감동의 여운과 함께 이 사자성어가 떠올라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20일 개막한 연극 ‘반신(半神)’은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 최고의 연극예술가’라는 노다 히데키 도쿄예술극장 예술감독의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몸이 붙어 하나의 심장을 가진 샴쌍둥이 수라와 마리아의 이야기다. 이들의 슬프고 비극적인 운명은 극 중 반복되는 수학적인 언어로 요약된다. ‘2분의 1’에 ‘2분의 1’을 더하니 ‘1’이 아닌 ‘4분의 2’가 됐다. 수수께끼 같은 수학방정식이 ‘머리 둘, 다리 넷’ 달린 존재로 인간 세계에 나타나지만 그 존재는 ‘요물’처럼 감춰야 할 대상이다. 똑똑하고 못생긴 ‘2분의 1(수라)’이 ‘자아 찾기’에 나서자 고독과 수수께끼, 유혹, 욕망, 비밀, 참회 등 인간 세상의 여러 모습이 꿈틀거린다. ‘4분의 2’는 ‘2분의 1’로 ‘약분’될 수밖에 없는 운명. ‘2분의 1’은 세상에서 사라져 ‘요물’이 아닌 ‘인간’이 돼야 한다. 살아남는 ‘2분의 1’은 수라일까, 마리아일까.

극은 다차원적인 시공간 구성과 관념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신체 언어, 만화적인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함, 대중가요 패러디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적 유희 등으로 ‘샴쌍둥이 이야기’를 펼쳐낸다. 빨려들 것 같은 속도감과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실거리고, 연극적 재미가 가득하다. 연습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 및 출연진의 ‘창의적 영감’이 교류하며 만들어냈다는 이런 재미 하나하나가 파편화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응집돼 놀라운 극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노다 감독의 탁월한 점이다. 거장의 솜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원래 개막일(12일)을 하루 앞두고 급성 맹장으로 쓰러졌던 수라 역의 주인영이 열연한다. 그가 보여주는 수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객석의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수많은 ‘거리 두기’ 장치가 가동됨에도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있다. 출연진 중 최고 선임인 서주희를 비롯해 12명의 배우 모두 무대에서 살아 숨쉰다.

한국 배우의 에너지와 일본 제작진의 창의성이 무대에서 조화돼 융합의 힘을 발현한다. 기자간담회에서 “연극은 정치보다 강하다”고 했던 노다 감독의 말이 추상적이거나 공허하게 들리지 않고 가슴으로 다가오게 하는 무대다. 내달 5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