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 재발 막자] 重→輕→重→직무정지…'無원칙 제재'가 禍 키웠다
KB사태가 확산된 원인으로 ‘오락가락한 금융당국’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관련 내분사태에 대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제재 수위를 석 달 동안 세 번이나 바꾸면서 ‘고무줄 징계’로 ‘화(禍)’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많다. 정권 실세들의 뜻에 따라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인사 및 경영에 개입해 지배구조를 왜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의 금융사 제재시스템을 손보는 동시에 안정적인 금융사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커지는 금융당국 책임론

KB사태로 드러난 ‘민낯’ 중 하나는 금융당국의 원칙 없는 검사·제재 관행이다. 금융사 사건·사고에 개입하는 ‘잣대’부터 명확하지 않다. 4년 전 이맘때 신한은행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횡령 등 혐의로 고소하며 시작된 ‘신한사태’ 때 금융당국은 내내 뒷짐만 졌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용히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을 봐주는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번 ‘KB사태’ 때는 정반대였다. 이 전 행장이 지난 5월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된 문제점을 알려오자 금융감독원은 곧바로 대규모 검사인력을 파견했다. 번갯불에 콩 볶듯 2주 만에 검사를 마치고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에게 각각 ‘중징계(문책경고)’를 통보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이후 오락가락한 제재 수위는 사태를 악화시켰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는 지난달 두 사람에 대한 중징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징계(주의적 경고)’로 낮췄다. 최 원장은 보름여 만에 제재심의 결정을 다시 중징계로 뒤집었다. 이 전 행장은 곧바로 사퇴했지만 임 전 회장은 크게 반발했다.

이쯤 되자 청와대 안팎에서 논란을 키운 금융당국에 대한 질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금감원에 맡겨두고 사태를 방관하던 금융위원회도 위기감을 느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결국 지난 12일 ‘초강수’를 뒀다. 최 원장이 건의한 ‘문책경고 의견’보다 제재 수위를 한 단계 높여 임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임 전 회장을 퇴진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신 위원장과 당국이 다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 근본 대책 나와야”

보다 근본적인 비판도 제기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되풀이되는 금융권 낙하산 인사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영혼 없이’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인선뿐만 아니라 퇴진까지 개입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관치금융’을 근절해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해 6월 이장호 전 BS금융 회장에게 ‘너무 오래 했다’는 이유로 퇴진을 요구하고, 최근 내년 3월이 임기인 김기범 대우증권 사장을 그만두게 한 게 대표적 사례다.

금융권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처벌 위주의 낙후된 금융감독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도적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민간 금융연구소 대표는 “금융위가 작년부터 추진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가다듬어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며 “2년 넘게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도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