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대차 비정규직 900여명에 일부승소 판결…체불임금 231억원 인정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정규직으로 인정되는 길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18일 강모씨 등 994명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이 현대차의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소속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로부터 업무 지휘를 받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누가 근로의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는지를 따져 노사간 근로계약 관계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현대차는 (직접 고용한 직원뿐 아니라)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에도 적용되는 안전보건관리 표준 등 구체적인 업무표준, 감독 지침을 제정해 시행했다"며 "또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 중에서 모범사원을 선정하고, 현대차 노조의 단체협약 등을 체결하면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까지 합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의 지휘를 받은 파견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파견 근로자의 경우 실제 일을 한 사업장에서 2년을 초과해 근무하면 직접 고용을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며 "원고들은 2년 이상 파견돼 근무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현대차는 이들을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표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원고인 이들 근로자는 현대차 공장에서 다른 현대차 소속 직원들과 함께 일하지만 근로계약은 사내하청업체와 체결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현대차에 소속된 정규직 근로자들에 적용되는 고용 안정 등에 관한 단체협약·취업규칙에서 일부 배제됐다.

하지만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최병승씨 등이 낸 소송에서 이 같은 차별적 처우의 위법성을 인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대차와의 직접 고용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자 원고들은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에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하고 밀린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법은 '사업주가 2년을 초과해 계속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고용 의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현대차에 신규 채용돼 이미 직접 고용 관계가 이뤄진 40명의 소송을 각하하고 865명에 대한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를 받아들였다.

현대차가 고용의 의사를 표하게 해달라는 69명의 청구도 인용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적용한 체불 임금을 달라는 원고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전체 585억원 중 231억원만 인정했다.

당초 이날 재판부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 1천175명에 대한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181명이 소 취하서를 제출함에 따라 소송을 유지한 원고들에 대해서만 '분리 선고'를 했다.

그간 현대차는 최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개별 케이스에 불과하다며 이들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선고 직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측은 "지난 3년 11개월동안 해고와 구속까지 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며 "법원에서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은 만큼 현대차에 직접 교섭을 요구해 당사자인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1심 판결과 별개로 지금까지 사내하청업체 직원 2천438명을 직영으로 고용했다"며 "앞으로도 대규모 채용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2015년까지 4천명의 하도급 직원을 직영 기술직으로 채용해 사내하도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