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도시재생, 도라노몬힐스에서 배워라
도쿄에 들른 김에 ‘도라노몬힐스’를 찾았다. 도라노몬은 도심이라지만 좁은 골목에 목조건물마저 적지 않았던 낙후된 지역. 답답하기 짝이 없던 이 거리가 최근 완공된 이 초고층복합 빌딩 덕분에 다시 도쿄의 핵심 상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해서다. 오피스와 상업시설은 물론이다. 호텔과 문화시설에 주거시설까지 대규모로 갖춰 롯폰기힐스 도쿄미드타운과 더불어 ‘도쿄 도시재생의 3대 상징’으로 불리는 대단위 시설이다.

도라노몬힐스는 그러나 다른 두 빌딩과는 큰 차이가 있다. 빌딩을 나와 사쿠라다길 쪽으로 돌아가 봤다. 왕복 4차선 도로가 빌딩 지하를 관통하며 밖으로 이어진다. 신바시에서 땅속을 파고든 도로가 1.4㎞의 지하를 지나 이곳에서 솟아난다. 지하도로의 출구인 것이다. 그러니까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도로를 내고 그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지상 52층, 높이 247m, 연면적 24만5000㎡의 초대형 빌딩을 지하도로 위에 건설한다.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연성을 먼저 꼽아야 할 것 같다. 도시개발 사업은 민간 개발자가 주도할 수 없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재생촉진특별법을 만들고 도시재생특별촉진지구를 지정한 것은 기본이다. 용적률부터 대폭 늘려줬다. 주변에서 이용하지 않은 용적률을 다른 토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용적이전제도’다. 도라노몬힐스의 용적률이 1150%고, 용산 재개발 계획처럼 철도 기지창을 재개발한 시오도메지역의 용적률이 1466%다. 용산에 허용됐던 용적률 608%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기부채납 비율도 용산은 40%나 되지만 롯폰기는 36%, 시오도메는 28% 선에 불과하다.

인허가 기간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모리빌딩주식회사가 특정 건축업자로 선정된 뒤 인허가를 받고 그 큰 건물을 짓는 데 걸린 시간은 5년, 완공 후 영업을 시작하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27년을 끌어온 잠실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여전히 규제에 묶여 있다.

과감한 규제 완화에 기업들은 독특한 아이디어와 대규모 투자로 화답하고 있다. 도라노몬힐스처럼 도로와 건축물의 부지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입체도로제도’가 대표적이다.

모리빌딩은 더욱이 이 건물 인근에 향후 10년간 1조엔을 투입해 10건의 대형 개발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하 25m까지 상업시설과 주차장을 들이고 지상 15m에 인공지반을 형성해 자동차도로를 지하화한다. 주요 빌딩은 모노레일로 연결하고 지상은 생태하천과 녹지로 개발돼 워킹존을 형성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도쿄 미나토구 210ha를 통째로 연결하는 이른바 ‘수직정원도시’다.

주민들을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시켜 왔다는 것은 또 다른 성공 요인이다. 민간 기업은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고, 지자체도 이를 적극 지원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도 마치쓰쿠리라는 커뮤니티 조직을 통해 지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건전한 자세로 대화에 임했다. 가장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의 서울은 어떤가. 용산 재개발, 뉴타운 등 초대형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지원할 정부의 도시재생 조직도 없었고, 제대로 된 민간 디벨로퍼도 없었다. 주민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노력도 더더욱 모자랐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다행스러운 것은 당국이 뒤늦게나마 도시재생을 위해 규제도 풀고 적극적인 지원에도 나서기로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구상이 제대로 된 개념에서 출발하는지 의문스럽다. 지나치게 커뮤니티 중심의 소규모 개발에 몰두하고 있어서다.

도시재생은 도시 경쟁력을 되살릴 뿐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신사업의 기회를 창출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 경쟁력이다. 도쿄는 그런 식으로 다시 아시아 중심도시로 올라섰다. 우리에겐 왜 서울을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인지. 당국자들에게 도라노몬힐스 견학을 권해보고 싶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