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法治의 실종, 위협받는 한국의 미래
대한민국 국회를 둘러싼 비판이 거세다. 제대로 된 입법 활동은 내팽개친 채 이전투구(泥田鬪狗)식의 정쟁으로 날을 샌다는 비판부터 입법 로비 의혹 및 비리 의원 감싸기 등과 관련된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질에 대한 비판까지, 이렇듯 국회에 대한 비난이 거센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치는 사회 구성원들 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동을 촉진하는 것이 존재 이유일진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협동을 파괴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고 보면 그런 비난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판국에 법치를 운운한다는 것은 지적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금의 국회 행태는 법치의 개념에서 한참 멀어진 법의 타락 현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고, 법의 타락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새삼 법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는 현존하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준법(遵法)’을 넘어 자유세계의 법이 담아야 할 내용과 성격을 의미한다. 자유세계와 양립할 수 있는 법치가 의미하는 법은 국가를 포함한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행위 준칙으로서 행위자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어야 한다. 특히 준칙을 넘어 특수한 목적을 법에 담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정부가 강제력을 바탕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법치의 실종은 정의로운 행위 준칙에 대한 고려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법이 실현해야 하는 정의로 간주되는 오류에서 연유한다. 법이 규정하는 행위 준칙에 의거해 형성되는 사회의 자생적 질서 아래에서는 누가 어떤 결과를 얻을지 알 수 없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법이 행위 준칙을 넘어 정치적 이유로 달성하고자 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게 되면 법은 구성원들 간 싸움의 도구로 변질된다. 특수한 목적을 가진 법은 필연적으로 강제를 수반하고 사전(事前)에 승자와 패자를 가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 간 협동이 아닌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전투구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입법 로비는 그에 대한 증거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형국이다. 지난해에 불었던 이른바 ‘경제민주화’ 입법 광풍이 대표적이다. 자유시장에서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는 사기나 협잡 등의 행위만을 금지할 수 있을 뿐, 자유시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른 일반적인 행위 준칙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정부가 가격이나 수량을 통제하고 사업 참여자를 제한하는 입법은 필히 경제주체들 간의 차별을 수반하므로 원칙적으로 배제돼야 할 수단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입법과 동반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각종 정책은 바로 그런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협동을 촉진하기 위한 장기적인 수단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소급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소급 입법은 분명히 퇴행적이다. 자유세계와 양립할 수 없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입법은 설령 그것이 특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

최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발표된 증세안도 점차 법치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정부의 복지활동이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강제력을 동원해 개인들의 사적 영역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이 점증하는 현실에서 법치는 근접하기 어려운 이상(理想)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이 무엇이고 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털끝만큼의 인식도 없이 입법 건수가 의정 활동의 성적표로 인식되는 입법 폭주의 시대에 법치의 개념을 되새기는 일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19대 국회에 들어서도 지금까지 1만1000건이 넘는 법률안이 입법 발의되지 않았는가.

흔들리는 나라의 기강을 다잡고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법의 타락을 막고 국가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법치에 예속되는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들의 법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