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세탁기 문이 닫혀 있는 모습(왼쪽)과 파손된 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태(오른쪽).
정상적으로 세탁기 문이 닫혀 있는 모습(왼쪽)과 파손된 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태(오른쪽).
삼성전자는 조성진 LG전자 사장(HA사업본부장)을 업무방해, 명예훼손,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고 14일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조 사장과 LG전자 일부 임직원이 지난 3일(현지시간) 국제가전전시회 IFA 참석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베를린 시내의 가전 양판점에서 삼성전자 독일법인 소유의 드럼세탁기를 고의로 파손해놓고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경쟁사 제품을 살펴본 사실은 있으나 고의로 파손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똑같이 ‘2015년 세계 1위 가전회사 도약’을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사업 경쟁이 핵심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사장급 경영진의 실명을 거론하며 수사 의뢰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독일에서 무슨 일이

삼성전자 측은 참고자료를 통해 독일 베를린 현지에서 입수한 CCTV 등을 보면 조 사장과 LG전자 임원진으로 추정되는 동양인들이 지난 3일 전자제품 양판점인 자툰사(社)의 베를린 슈티글리츠 매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삼성전자 ‘크리스탈 블루’ 드럼세탁기의 문을 열고 두 손으로 눌러 문의 힌지(지지대)를 파손했지만 이를 매장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파손된 세탁기는 판매용이 아니라 홍보 목적의 전시 제품으로 소유권은 삼성전자 독일법인에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CTV 영상을 보면 조 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 세탁기 문을 누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성인이 힘껏 누르지 않고는 파손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또 LG전자의 임원급 연구위원이 인근의 유로파센터 매장을 찾아 똑같은 방식으로 삼성 세탁기를 파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유로파센터 파손 사건은 매장 주인이 현장에서 발견했고, LG전자 측이 파손된 세탁기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삼성·LG '세탁기 파손' 공방…獨서 무슨 일이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조 사장 등이) 세탁기를 살펴본 것은 맞으나 고의로 파손한 적은 없고, 매장 측으로부터 어떠한 배상 요청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당사자인 조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삼성 제품뿐 아니라 LG를 포함한 다른 회사 제품들도 두루 살펴보고 특장점을 직원들과 논의했을 뿐”이라며 “만약 제품이 파손된 걸 알았다면 당연히 매장 측에 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 매장을 관리하는 삼성 직원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보는 가운데 제품을 파손하려 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배상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LG 주장에 대해, 삼성은 해당 매장 측이 지난 5일 베를린 45구 경찰서에 LG전자를 고발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또 “독일에서도 조 사장이 개입된 것을 알았으나 국익을 생각해 IFA 일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다”며 “최고위 임원이 제품을 파손하고 그냥 떠났을 뿐 아니라, 거짓 해명까지 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사건을 접수했으며 15일 배당할 것”이라며 “삼성 측 주장대로 CCTV 자료가 남아있다면 진위를 밝혀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소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수사 의뢰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싸움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난타전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회사는 2012년 4월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빼갔는지를 두고 1년 반 동안 소송을 주고받다가 2013년 9월에야 정부 중재로 취하했다. 같은 해 8월엔 삼성전자가 LG전자 냉장고 용량표시를 문제 삼아 비교광고를 내보내자, LG 측이 “사실과 다르다”고 맞서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급 경영진을 실명으로 수사 의뢰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두 회사는 2015년 가전시장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나란히 내걸고 양보 없는 경쟁을 벌여왔다. 현재 세계시장 1위는 미국 월풀로, 두 회사는 2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번 IFA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으로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스마트홈’ 기술과 청소기 신제품 등을 나란히 전면에 내세우며 양보 없는 홍보·마케팅 전쟁을 벌였다. 덕분에 “세계 가전업계 중 한국 업체들의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외국 언론의 평가도 나왔지만, 이런저런 불협화음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일 미국의 유명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리포트가 삼성전자 식기세척기를 ‘비추천 제품’이라고 평하자, LG전자가 이를 간접적으로 홍보에 활용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정소람/남윤선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