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명망가들의 추락
골프를 잘 못 친다고 흉보는 일은 없다. 실력 그 자체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 하지만 예절이나 에티켓 문제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어떤 스포츠나 레저보다 예의와 매너를 따지는 게 골프다. ‘18홀이면 한 사람의 됨됨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런 말처럼 골프 한번이면 성격, 스타일에 인생역정까지 온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매너가 더욱 중시된다. 운동보다 사교, 교제, 비즈니스의 방편으로 골프인 경우에는 예절이 더 중요해진다.

산전수전 겪은 노 정객이 골프장에서 젊은 여성 캐디에게 점잖지 못한 행동을 했다가 망신살을 사고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씨(76) 얘기다. 이런 구설은 늘상 양쪽 말이 조금씩 달라 속단하기는 어렵다. 구력 40년이라는 그가 적어도 에티켓에서는 문제있는 골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6선 의원의 스타일이 일단 구겨진 셈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주말 씨름단체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봉변아닌 봉변을 당했다. 씨름협회장에게서 “입씨름을 많이 하는 것보다 실제로 (의원들이) 씨름대회를 해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면 어떤가”라는 농담을 들은 것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쓴소리 같기도 했지만 가벼운 농담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집권여당의 대표는 “면전에서 조롱당했다”며 준비한 축사도 다 읽지 않은 채 서둘러 떠나버렸다고 한다. 거북하기야 했겠지만 정작 농을 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열받아 버리면서 ‘리더 급’의 이미지가 크게 상해버렸다고나 해야 할지….

소위 명망가들이 망가지는 일이 흔해졌다. 근엄한 지검장 검사는 밤골목에서 여고생들 앞에서 이상한 행위를 했다가 결국 사퇴했다. 만취한 4성 장군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추태로 전역됐다. 대학에서도 교수가 추락하는 일이 다반사다. 정치권에는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그간 전문가로서 쌓아올린 이미지를 다 까먹는 일도 허다하다. 추문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여론의 시대에 사적공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증폭된다.

민주주의는 권위를 무너뜨리는 속성도 있다. 한나 아렌트가 ‘현대적인 발전’과 ‘권위의 위기’를 동일 선상에서 본 게 벌써 반세기도 더 된 일이다. 곳곳에서 그런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필요한 권위는 지켜야 할 계층이 그렇게 못하고 있다. 커다란 감투값을 하려면 남보다 더 참고 더한 절제가 필요한 시대다.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신독(愼獨)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정도는 알아야 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