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유커 1억명 시대' 살아가는 법
“서울에 전쟁이 나면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9~11층으로 대피하라.” 유통업계에서 회자되는 유머의 하나다. 도대체 이곳에 뭐가 있길래. 국내 최대의 시내 면세점인 롯데면세점이 들어서 있는 자리다. 이곳 쇼핑객의 절반 정도는 ‘유커(遊客)’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도 중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우스갯 소리다.

유머의 세계에서 ‘전쟁 억지력’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유커는 이미 현실에서 한국인들의 삶의 패턴을 바꿔 놓고 있다.

올 추석 전국의 모든 백화점들이 이틀씩 쉬었지만, 유커들의 쇼핑 명소인 롯데 본점·잠실점·부산점 등 세 점포는 추석 당일 하루만 휴점했다. 백화점 측의 영업 전략이 주효해 추석 연휴 때 이들 점포를 찾은 외국인 쇼핑객은 이전에 비해 67%나 늘었다. 특근을 한 직원들은 별도의 추석 선물과 귀향 여비를 받고, 15일을 대체 휴무일로 정해 이 세 곳만 쉬기로 했다. 앞으로 유커들이 즐겨 찾는 유통 매장 직원들의 명절 근무 패턴은 이런 식으로 변해 갈 것이다.

생활 패턴 바꿔 놓는 유커

세계 관광·서비스 산업의 최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유커 숫자가 올해 1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당초 유커 1억명 시대 개막 시점을 2020년부터로 전망했지만 6년이나 앞당겨졌다. 한국을 찾는 유커도 지난해 432만명에 이어 이어 올해는 40%가량 늘어난 600만명대로 예상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국내에도 유커 1000만명 시대가 열리게 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커로 인한 우리 경제의 생산 유발효과는 13조원을 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유커의 부상은 우리에게 서비스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하고 있다.

유통, 외식,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산업을 내수 업종이 아닌 글로벌 비즈니스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빠른게 반응하는 쪽은 역시 기업들이다. 샤넬 에르메스 등 콧대 높은 명품 기업들이 한국 드라마 간접광고(PPL)에 열을 올리는 것은 한국 소비자보다는 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해서다. 루이비통이 YG엔터테인먼트에 자본 투자를 하고, 제일모직과 YG가 손잡은 것도 한류 아이돌 스타들을 활용해 중국 고객을 잡기 위한 포석이다.

서비스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중소기업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면세점 정책이 그렇다. 골목상권 규제나 중소기업적합업종 규제에서처럼 면세점에도 경제민주화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면세점이 갖는 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중국이 휴양지 하이난에 세계 최대 면세점을 짓고,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 때까지 면세점 수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하는 글로벌 경쟁 흐름에도 역행한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려온 것은 수출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우리의 수출 전선은 녹록지 않은 도전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산업은 미래 먹거리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커 특수’는 이제 우리 경제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 가고 있다.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