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클림트…그리고 커피가 있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수도 빈(영어명 비엔나)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래된 이 도시의 실핏줄처럼 연결된 슈트라세(도로)와 가세(작은 길)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숨쉬고 있다. 거리를 헤매다 보면 모차르트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스쳐 지나가고, 괴팍했던 베토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 비장한 모습으로 악보를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도시, 햇살이 음표처럼 쏟아지는 도시를 5박6일 동안 거닐었다.

위대한 역사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

빈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이해하려면 합스부르크 왕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했던 가문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제국의 수도가 하나인 것처럼 빈도 하나”라고 말했다. 추억과 자부심이 가득한 슈트라우스의 말처럼 빈 곳곳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들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빈 남동쪽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궁전인 벨베데르다. 궁전 하면 보통 왕이 사는 곳이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때로는 고위 관리의 관저로도 쓰였다. 벨베데르 궁전도 마찬가지다. 벨베데르는 1683년 빈을 침공한 튀르크 군대를 격퇴한 프랑스 출신의 전쟁 영웅 오이겐 공이 살던 곳이다.

경사진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상궁(上宮) 벨베데르인데 1723년 완공됐다. 북쪽의 낮은 대지에 있는 건물이 하궁(下宮) 벨베데르로 1716년에 완공됐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립미술관이다. 마침 빈에서 묵은 호텔이 궁전 바로 옆에 있어서 새벽마다 궁전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

벨베데르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궁전이기도 하다. 왕궁의 격조가 있는 데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유디트’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클림트의 작품만 보고 바쁘게 자리를 뜬다. 그러면 코끼리의 다리만 만지고 가는 격이다. 클림트에 비견되는 천재화가 에곤 쉴러의 대표작인 ‘가족’이나 오스카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놓쳤기 때문이다.

뛰어난 풍경을 간직한 쇤부른 궁정

벨베데르가 전쟁 영웅의 거처였다면 빈 서쪽에 있는 쇤부른 궁전은 황제가 살았던 황궁이다. 건물의 길이가 200m를 넘고, 특색 있는 방이 1441개나 되는 쇤부른 궁전은 신성로마제국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1762년 모차르트가 겨우 여섯 살 때 여황제 마리오 테레지아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쇤부른 궁전에 있는 다양한 방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본전을 뽑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천장에 프레스코화가 있는 대회랑은 물론 프란츠 요제프의 소박한 침실,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엘리자베트 왕비의 품격 있는 방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쇤부른의 백미는 역시 궁전 뒤쪽에 조성돼 있는 대정원이다. 30만그루가 넘는 꽃나무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과 해신 넵튠의 웅장한 조각상, 하늘 높이 솟는 분수가 한눈에 보인다. 궁전 안에는 1752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프란츠 1세 황제가 설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도 있다.

빈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커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카페 챈트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카페 챈트랄.
빈에서 커피는 단순히 기호식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빈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빈은 카페에 둘러싸인 도시다’라고 했을 정도로 빈 중심가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커피하우스가 1200여개나 영업 중이다. 지금은 호텔이 된 자허, 카페 데멜을 비롯해 카페 챈트랄 등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커피하우스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140년의 역사를 간직한 카페 챈트랄이다. 카페 자체가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카페 챈트랄은 합스부르크가 건재했던 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오스트리아의 괴짜 시인 페터 알텐베르크의 동상이 놓여 있고, 낭만주의 시대의 카페에 들어선 것처럼 낡았지만 기품 있는 탁자들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리학의 전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해 영구 혁명을 주장했던 트로츠키와 스탈린, 히틀러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이 카페를 찾았다고 한다. 특히 동상의 주인공인 알텐베르크는 이 카페를 너무나 사랑해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고, 나중에는 주소지까지 카페로 옮겨 놓았다.

100여년 전 빈의 카페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었다.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교류하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정보를 공유하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사를 한탄했다. 카페 챈트랄에서 커피를 시키면 커피와 함께 꼭 물을 내놓는다. 먼저 물로 입안을 헹군 다음에 커피를 제대로 음미하라는 뜻이다. 휘핑크림을 넣어 달디단 한국식 비엔나 커피는 빈에는 없다. 빈 커피는 오히려 씁쓸하고 강한 맛이 난다. 빈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자허토르테(케이크에 살구잼이 들어간 오스트리아의 유명 케이크) 같은 초코케이크와 곁들여 먹는다.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빈의 심장 슈테판 성당

 슈테판 성당의 내부.
슈테판 성당의 내부.
빈 곳곳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빈의 중심인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한 케른트너 거리에는 빈을 위대하게 만든 음악의 거장들이 남겨 놓은 자취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슈테플 백화점 건물 뒤편에 있는 카페 프라우엔 후버는 1788년 개업 당시 모차르트가 기념 연주를 했던 곳이고, 슈테플 백화점은 모차르트가 1791년 숨을 거둔 집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건너편 골목에는 항상 2인자로 살며 불우했던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살던 집이 있다. 그는 질투의 화신 또는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가르친 뛰어난 음악가였다.

슈테플 백화점을 보고 골목을 돌아나서면 작은 바가 하나 보인다. 평범한 바처럼 보이지만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1908년 만든 사랑스러운 건축물인 아메리칸 바(로스 바)다. 건축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시대를 뛰어넘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자랑한다.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길을 돌아 중심가에 서면 슈테판 성당이 보인다. 빈 사람들은 빈 중심에 있는 슈테판 성당을 ‘빈의 심장’ 혹은 ‘빈의 혼’이라고 부른다.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소란스럽지만 막상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엄숙하고 고요하다. 슈테판 성당은 500년 빈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봤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과 치욕을 함께 했으며 세계대전의 참화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다. 모차르트는 이곳 슈테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미사도 여기서 거행됐다. 하이든, 슈베르트가 어린 시절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귀여운 목소리로 성가를 불렀던 곳이기도 하다.

빈의 문화와 예술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구스타프 클림트다.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도시라면 빈은 클림트의 도시다. 클림트의 그림은 수없이 많은 상품들 속으로 들어가 다양하게 소비된다. 팬시용품과 컵, 물병, 접시, 머플러, 우산은 물론 성냥갑에도 클림트의 그림이 들어 있을 정도다.

위대한 예술가가 묻힌 중앙묘지

모차르트…클림트…그리고 커피가 있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
클림트의 그림은 한자리에 모여 있지 않다. 벨베데르 박물관은 물론 무목이라 불리는 루드비히 현대미술관, 에곤 실레 작품이 오롯이 모여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에서도 클림프의 그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클림트가 오스트리아 예술의 중심이 된 이유는 그림 한 점당 현재 시가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그림값 때문만은 아니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분위기와 소수 귀족 후원자들의 취향에 영합하는 오스트리아 문화 풍토의 단절을 선언하며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과거와 분리한다는 뜻을 담은 이들 분리파의 선두 주자가 바로 클림트였다. 분리파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문화를 비옥한 대지로 만들었다.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를 무거운 색채로 그려낸 에곤 실러나 오스카 코코슈카, 천재 건축가 오토 바그너, 아돌프 로스 등이 분리파로 활동하며 빈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뛰어난 건물을 세웠다.

예술가의 또 다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빈 남동쪽 외곽의 중앙묘지다. 중앙묘역에는 햇빛이 음표처럼 산란한다. 중앙묘지의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석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공동묘지라고 해서 음산한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공원 같은 느낌이다.

길 끝에는 커다란 예배당이 있고, 중앙묘지 중심부에는 음악가들의 묘지가 있다. 음악가 묘지의 중심은 역시 모차르트다. 모차르트는 전염병으로 죽은 뒤 여러 사람과 함께 묻혀 묘지가 어디인지 모른다. 그의 추종자들이 묘비만을 세운 기념탑은 왠지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모차르트 기념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베토벤의 묘가, 오른쪽에는 평생 베토벤을 흠모했던 슈베르트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빈 중앙묘역의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 묘지.
빈 중앙묘역의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 묘지.
이 세 사람의 묘지 옆에는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가 산 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묘지를 찾은 이들은 예술가들을 보면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 스마트폰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선택했다. 묘지 안으로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이 퍼지기 시작했다. 바람결에 마지막 긴 그림자를 남기는 햇살과 함께.

■쇤부른에서 하룻밤…황제숙박 패키지 등장

항공 인천에서 오스트리아 빈 공항까지는 직항 기준으로 갈 때 10시간30분, 올 때 9시간30분 걸린다. 대한항공 인천~빈 직항편(261석 규모 B777)은 주 3회(수, 금, 일) 운항한다. 10월26일부터 내년 3월28일까지는 인천~빈~취리히~인천 노선으로 병합 운항(화·목·토)한다.

시차 7시간

전원 220V로 따로 어댑터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날씨 빈의 가을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숙소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체인 호텔인 오스트리아 트렌드 호텔은 시설은 특급이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합리적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벨베데르 궁전 근처 사보엔 호텔을 비롯해 10여개의 체인 호텔이 있다. 트렌드 호텔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인 쇤부른 궁전에서 숙박할 수 있는 ‘황제 체험 숙박 패키지’도 내놓았다. 주로 신혼여행객들이 이용하며 24시간 리무진 서비스, 허니문 나이트와 미니바 조식을 제공하는 패키지 가격은 1박 2700유로다. 예약은 thesuite.at, 전화 588-00-800으로 하면 된다.

음식 오스트리아 대표 음식은 슈니첼.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돈가스나 비프가스와 거의 비슷하다. 소나 돼지고기 등을 얇게 저미고 다져서 밀가루나 빵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감자와 곁들여 먹는다. 노점에서는 소시지를 파는 집이 많은데 한국에서 말하는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는 아니다. 독일식 프랑크 소시지다. 여기에 맥주를 곁들이면 간단한 점심이 된다.

빈=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