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상하이 전경. 앵거스 디턴 교수는 “경제성장의 결과로 지구촌 전체는 이전보다 훨씬 평평해졌다”고 주장했다. 한경DB
단기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상하이 전경. 앵거스 디턴 교수는 “경제성장의 결과로 지구촌 전체는 이전보다 훨씬 평평해졌다”고 주장했다. 한경DB
평등과 불평등 문제는 익숙한 논쟁거리다. 많은 담론가들은 특히 불평등에 주목한다. 그 기원은? 진행 양상은? 교정 혹은 보완책은? 무수한 주장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문제 제기는 쉽지만 해법은 어렵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선동가들이 넘치는 배경이기도 하다. 피케티 신드롬이란 현상도 실은 그런 것일 수 있다. 《21세기 자본》이 출간되자마자 파이낸셜타임스는 일곱 가지 방식의 통계 조작과 비약이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미국의 기업연구소는 통계처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저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몽펠르랭소사이어티는 최근 연차총회에서 피케티의 이론을 한마디로 엉터리라고 규정했다.

[책마을] 피케티가 간과한 것…불평등은 성장을 촉발시켰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상은 계속 불평등해진다는 피케티의 주장과 달리 세상은 놀랄 정도로 평평해진다는 실증적 연구도 많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위대한 탈출》도 그런 책이다. 불평등이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켰고, 그 결과 세상은 얼마나 평등해지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케티의 책보다 앞서 2013년에 출간됐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은 빈곤과 궁핍, 비위생 상태의 열악한 삶에서 탈출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 탈출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졌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wealth)와 건강(health)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그 결과 수명도 비약적으로 연장됐다. 그래서 영화 제목처럼 ‘위대한 탈출’이다.

디턴은 부와 건강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경제성장과 부의 증진에 따라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윤택해진 사실을 입증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행복 경제학’의 창시자인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1974년 논문 ‘소득이 높아져도 꼭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을 염두에 둔 논증이다. 디턴 본인도 부와 행복도에 대한 조사를 했다.

[책마을] 피케티가 간과한 것…불평등은 성장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분석은 다르다. 이 책의 탁월성이다. 국가별 소득 수준과 삶에 대한 평가(만족도)도 일정 수준까지만 비례적 상관관계가 나타날 뿐 어느 국면에 달하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이는 비례치가 없는 단순 분석일 때였다. 로그 분석으로 보면 소득 증가에 따라 삶의 만족도는 거의 정확한 비례관계가 성립한다. 소득 증가의 체감도를 단순히 절대액으로가 아니라 비율(%)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접근법이다. 그렇게 보면 이스털린의 가설은 맞지 않고, 소득과 만족도는 계속 비례한다.

경제성장의 결과로 지구촌 전체는 이전보다 훨씬 평평해진다는 사실을 디턴은 수명, 건강, 부의 분석으로 입증했다. 수명과 건강은 경제성장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과 인도에서 성장에 따른 영아 사망률이 하락한 통계다. 신흥국과 저개발국의 약진에 따라 세계의 빈곤 인구 감소도 확인됐다. 기대수명의 증가세는 극적이다. 1950년대 북유럽과 아프리카의 기대수명 격차는 31.9년이었다. 2010년 이 격차는 26.5년으로 줄었다. 남미·동남아·동아시아 등 어떤 권역별로 비교해도 기대수명의 차는 줄어든다.

물론 성장이 불평등도 수반한다. 디턴은 이 점에도 주목했다. 다만 성장과 발전의 부산물로 초래된 불평등이다. 가령 생산성 향상으로 영세 수공업자, 신기술의 낙오자 등 일부 계층은 몰락했다. 개방화 국제화로 미국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있었다. 하지만 특정 국가 차원이 아니라 인류 전체로 보면 그 반대였다. 대자산가의 등장, 중산층의 확장도 주목할 일이다. 미국에서 일시적 제한적 불평등의 대가로 중국과 인도의 수십억 대중이 인간답게 살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불평등이 더 큰 평등을 수반한 것이다. 한국도 그렇게 빈곤에서 대탈출했다.

불평등 사례는 더 많다. 지금 살아남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영아들이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라면 60년 전 사회 수준으로도 생존할 수 있었다. 그것만 보면 불평등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아프리카 최빈국에서조차 산업혁명 직후 세계 제일의 부국이던 영국보다도 영아 사망률은 더 낮아졌다. 그 결과 지구 전체로는 10년마다 인간 수명이 2~3년씩 늘어나는 사실에도 저자는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개발국가의 빈곤 퇴치에 더 적극 나서야 하는 게 앞선 ‘탈출자’들의 도덕적 의무라고 그는 설파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