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중국 화가 류 샤우동의 작품 ‘열여덟살의 아르헷’.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중국 화가 류 샤우동의 작품 ‘열여덟살의 아르헷’.
3일 오후 4시께 광주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야외 광장. 흰색, 검은색 상복을 입은 20여명이 까만 안대를 한 채 20m쯤 앞에 놓인 컨테이너를 향해 걷는다. 손에는 검은색 보자기로 싼 상자가 들려 있다. 이어 컨테이너 앞에서 제사가 시작됐다. “이제야 모시게 돼 죄송하다”며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입구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입구
40분가량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5일부터 11월9일까지 66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 중외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제10회 광주비엔날레의 개막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다. 이승만 정권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조명하는 임민욱 작가의 신작이다. 경남 진주와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 방치됐던 컨테이너의 민간인 유해를 광주로 이송해 한을 품은 채 살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상황을 알린다.

이날 퍼포먼스에는 6·25전쟁 때 자행된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직접 참여했다. 경산에서 온 유가족 윤용웅 씨(70)는 “전쟁 때 부친을 잃었다”며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골이 전국에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고,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란 주제로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에는 38개국 작가 111명(103팀)이 참여해 413점을 선보이며 그 중 신작이 39점이다. 제시카 모건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올해 주제는 1980년대 대중을 열광하게 했던 뉴욕 출신 진보주의 그룹 토킹 헤즈의 앨범에 수록된 대표곡에서 따온 것으로, ‘낡은 체제를 불태워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터전을 불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것을 불태우는 행위인데 터전이란 제도, 상징, 장소 등 다양한 것을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은 “광주비엔날레가 20주년을 맞는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정치·사회·미학적 주제가 함께 어우러져 토론을 생산하는 토양을 제공했다”며 “광주비엔날레는 단순한 현대미술 전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5개의 전시실과 야외광장, 민속박물관 및 팔각정 창작 스튜디오 등에 작품이 전시된다. 제1전시실에는 구속과 투쟁의 상황에 놓인 신체와 개인 주체의 관계를 다룬다. 설치작가 이불의 초기 퍼포먼스와 사진작가 김영수의 고문 재현 시리즈를 비롯해 제인 알렉산더,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소비문화와 이로 인해 벌어진 물질주의를 다룬다. 모건은 “10년 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작가들이 어머니가 썼던 실, 천 등 귀중한 물품을 전시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사무실 의자, 필요 없어진 장난감 등 쓸모없는 물건들이 전시장에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겅지안이, 쉴라 가우다,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 테츠야 이시다, 이완, 히데미 나시다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제3전시실의 주제는 집과 파편화된 도시 풍경 등이다. 아크람 자타리, 제니퍼 알로라와 기예르모 칼사디야 등의 신작 필름 등이 소개된다. 제4전시실에는 샤론 헤이즈, 안드레아 바워스, 카를로스 모타 등의 작가들이 현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방식의 작품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5전시실에는 작가 곤살레스 포에스터가 영화 ‘피츠카랄도’(1982)의 주인공으로 분한 채 유령처럼 자리하고 있다. 행사 기간 중 전시장 곳곳에선 연극과 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광주=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