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지사가 있는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 A사는 작년 하반기부터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엔지니어 400여명이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혁신센터 건립을 추진하다 지난달 최종 포기했다. 경제자유구역 신설 외국법인에 대한 세제혜택은 국내에 처음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에만 준다는 규정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2003년 도입된 경제자유구역이 각종 규제와 실효성이 부족한 인센티브로 겉돌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9월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일본이 올 3월 국가전략특구 사업을 시작하는 등 외국인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선 가운데 한국도 적극적으로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기업 외면하는 경제자유구역…입주社 92%가 국내기업
○황해경제자유구역 외국 기업 ‘0’

산업통상자원부 경제자유구역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한 기업 2079개 가운데 외국 기업은 164개로 8%밖에 되지 않는다. 92%에 해당하는 나머지 1915개는 국내 기업이다.

경기 화성과 충남 서산·아산에 걸쳐 있는 황해경제자유구역은 2008년 출범했지만 입주 기업이 9개밖에 없다. 그나마 모두 국내 기업이다. 인천,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등의 외국 기업 비율도 5% 내외다.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외국 기업은 법인세·소득세 같은 세금과 임대료 감면 등 인센티브를 누릴 수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노동규제 완화와 국유지 장기임대 등 극히 일부 혜택만 받을 수 있는데도 경제자유구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작년 말까지 외국 기업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하겠다고 신고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81억3380만달러에 이르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35억5740만달러로 43%에 그쳤다.

안근배 한국무역협회 정책협력실장은 “외국 기업이 국내에 들어오는 건 우량기업과 네트워크를 쌓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도 세금 감면 등 비슷한 수준의 혜택을 주면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이 함께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작년 9월 출범해 두 달 만에 288개 기업을 유치한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는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100% 면제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국내 기업에 대한 법인세 면제 등을 검토했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맞춤형 인센티브 제공해야”

미국계 다국적 금융회사인 B사는 지난해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콜센터를 이전하려고 했지만 콜센터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는 업종이라는 유권해석을 받고 포기했다. 지난 3월 국가전략특구 사업을 시작한 일본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업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복잡한 인허가 과정에 따른 비용과 시간도 외국 기업이 입주를 꺼리는 요인이다. 대규모 건축물 인허가를 받기 위해선 토지적성평가, 지구단위계획수립, 환경·재해·교통영향평가 등 10여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경제자유구역특별법 11조는 개발사업자가 이 법에 따라 사업승인을 받으면 38개 다른 법률의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하고 있다. 그러나 단서조항에서 ‘관계기관장과의 협의에서 이견이 있으면 의제가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해 일괄 인허가를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안 실장은 “세제혜택 업종을 추가하고 글로벌기업 아시아 본부나 R&D센터 등 파급효과가 큰 투자에는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