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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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애초 삼성물산과 합병설(說)이 나돌던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과 합치기로 결정했다. 1년여 만에 전자·중화학부문 계열사 정리에 이어 건설로 사업구조 재편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합병이 사업적인 시너지 차원을 넘어서 지배구조(승계구도)와 연관성이 높다고 봤다. 큰 틀에서 보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고,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연결고리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해석이다.

◆ 삼성重·삼성엔지 '합병'…물산 시나리오 빗나가

1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초일류 종합플랜트 회사로의 도약을 위해 합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합병 비율은 1:2.36으로 삼성중공업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1주당 삼성중공업 주식 2.36주를 삼성엔지니어링 주주에게 교부할 예정이다. 두 회사는 오는 10월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며 12월 1일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앞서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제기돼 왔다.삼성물산이 지난해 7월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1년 새 지분을 7.81%로 늘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업계에서는 이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발표에 대체로 '허를 찔렀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지호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이번 합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며 "삼성물산이 아닌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을 합친 것에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계속돼온 여러가지 사업 변화와 마찬가지로 이번 역시 지배구조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게 맞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지배구조와 관련해 어떤 밑그림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세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으로 시가총액을 늘리기엔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물산은 그룹 지배구조와 승계 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만큼 세 자녀의 지분 확보가 필요한데 시총이 늘어나면 이 작업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연구원은 합병 이유보다는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삼성전자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은 향후 제일모직과 궁합을 맞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말 기준 삼성중공업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로 17.6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인 삼성전기도 2.38%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경우 삼성SDI가 최대주주로 13.10% 지분을 확보했다.

박 연구원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 위상을 고려할 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바뀌게 됐다"며 "삼성물산은 사업적인 면에서 제일모직 건설 부문과 시너지가 큰 만큼 추가적으로 두 회사 간 사업정리도 예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 역시 "건설 부문 사업재편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에 그치지 않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건설 부문을 재정비하는 쪽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몫이 어떻게 나눠질지 예상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기존 예상대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는 이 부회장 중심 체제로 가는 반면, 건설 부문은 이 사장 몫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 오는 11월 삼성SDS·제일모직 상장이 지배구조 열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오는 11월께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승계에 대한 윤곽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 예상한다.

[심층분석]삼성그룹 '허 찌른' 사업 재편…"경영승계 매듭 실마리"
지금까지의 사업구조 재편이 사전 정지 작업 성격이었다면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은 지배구조 정리와 승계 절차를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SDS는 이 회장의 세 자녀가 나란히 지분을 가진 기업이라는 점에서, 제일모직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주 삼성SDS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한데 이어 제일모직도 빠른 시일 내에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진행 속도 등을 감안하면 오는 11월에는 삼성SDS가, 12월에는 제일모직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의 시작은 대부분의 삼성그룹 계열사를 나눠서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삼성SDS 가치를 상승시켜 현물출자 용도로 사용하면서 오너 일가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최상위 지배기업이면서 승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제일모직 상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변환이 이미 시작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 핵심은 제일모직이 지주회사가 돼 실질적인 지분율로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며, 결국엔 자녀들끼리 계열분리를 정착하는 것이라는 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박 연구원은 "이 회장 세 자녀가 지분을 가진 삼성SDS는 다른 계열사와의 지분 맞교환을 하는데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제일모직의 경우 세 자녀가 지분을 계속 가져갈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