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가 1일 시작되지만 각종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부실·졸속 심사’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벌이고 있는 야당의 국회 보이콧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데다 주요 경제법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도 첨예하다. 8월까지 끝내야 하는 2013회계연도 결산 심사와 1차 국정감사 등이 고스란히 정기국회로 넘어왔다. 지난 5월2일 국회 본회의 이후 4개월 동안 법안 처리가 단 한 건도 없는 바람에 쌓여 있는 안건이 적지 않다.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제대로 된 법안 심사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법안 7822개 뭉개고 있는 국회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처리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국회 일정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태도다. 새누리당이 31일 제안한 정기국회 일정은 △9월1일 개회식 및 본회의 △3일 본회의(안건 처리) △15~16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17~23일 대정부 질문 △25일~10월14일 국정감사 △10월15일 예산안 시정연설 및 심사 착수 등이다.

이 일정대로 정기국회가 진행되더라도 수많은 법안과 예산안을 제대로 심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2월9일까지 예정된 정기국회에서 국회가 소화해야 할 일정이 예년보다 빠듯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7822건이다. 여야는 7월과 8월 임시국회를 잇따라 열었지만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지난 26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1차 국감이 어그러지면서 올해도 예년처럼 정기국회 회기 중 20일간 ‘원샷’으로 실시해야 한다.

새해 예산안 심사를 위한 전 단계인 2013회계연도 지출에 대한 결산안도 법정 처리시한(8월31일)을 넘겨 정기국회로 이월됐다. 새해 예산안은 올해부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1월30일까지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12월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된다. 헌법에 규정된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일부에서는 여야가 우선 정부안대로 예산안을 처리한 뒤 뒤늦게 심사를 벌여 수정안 형태로 의결하는 편법이 동원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16개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정무·기재·교문·농해수·산업·환노 등 6개 위원회는 하반기 원구성 이후 석 달이 지나도록 법안심사소위마저 구성하지 못한 상태다.

○야당 “11개가 가짜 민생법안”

여야는 정부가 시급한 처리를 요구한 민생 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에 대해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법안 처리 전망은 어둡다. 새정치연합은 정부가 처리를 요구한 법안 30개 중 10여개에 대해 ‘가짜 민생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이 지난 29일 발표한 가짜 민생 법안 11개는 크게 ‘의료영리화 추진 근거 법안’ ‘부동산투기 조장 법안’ ‘사행산업 확산 법안’으로 분류된다. ‘의료 영리화 추진 근거법’에는 의료법인 자회사의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관련 법안은)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적극 추진됐던 정책인데 야당이 됐다고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이자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이 ‘강남3구 특혜법’이라며 비판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폐지법’에 대해 박 대변인은 “2012년 말 재건축 부담금 부과 유예조치로 혜택을 본 강남지역은 전국 6곳 중 서초구가 유일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새누리당의 의석 수는 158석으로 과반(151석)이지만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없다. 상임위 단계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법안을 본회의에 신속처리 안건으로 상정하려면 의원 180명이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화법에 발이 묶여 법안 처리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태훈/고재연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