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표본실의 청개구리' 작가 염상섭
술에 취하기만 하면 삐뚤빼뚤 옆으로 걸었다는 사람. 그래서 친구들이 ‘횡보(橫步)’란 호를 붙여준 염상섭은 한국 근대문학과 삶을 함께한 소설가다.

1897년 8월30일 서울에서 태어난 염상섭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를 다니다 일본에 유학했다. 양대 사학의 하나인 게이오대 문학부에 재학 중 3·1운동 가담 혐의로 투옥됐다. 귀국한 해인 1920년 동아일보 창간멤버로 활동하다 나혜석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했다. 이듬해 첫 작품이자 한국 최초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혜성같이 등단했다.

1926년 1월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으나 2년 만에 돌아와 결혼하면서 직장생활에 충실했다. 창작에도 전념해 1931년 대표작 ‘삼대’를 집필했다. 이때부터 4~5년 사이에 염상섭 문학의 원류를 형성하는 3부작 ‘삼대’ ‘무화과’ ‘백구’가 완성됐다. 성실한 소시민이며 근대 지성인이었던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도 불의에 저항하며 현실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자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실천했다.

1936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 돌아와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맡으면서 ‘두 파산’ 등 작품을 발표했다. 6·25전쟁 때는 해군 정훈국 소속 소령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 전쟁 당시 서울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장편 ‘취우’를 썼다. 1955년 서라벌예대 초대 학장을 지냈다. 1963년 3월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해성 기자 l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