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극우세력이 세운 전범(戰犯) 추도비 건립 기념 의식에 메시지를 보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현장에서 크게 낭송된 이 편지에서 아베는 전범을 ‘조국의 초석(礎石)’으로까지 높여 표현했다고 한다. 이 추도비는 도쿄 전범 재판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가혹한 보복적 재판’으로 규정하고 전범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1994년 건립됐다고 한다. 추도비에는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전범으로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수감된 118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추도비를 세우고 법요식을 주최한 단체는 태평양전쟁 당시 장교들로 구성된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등 극우 민족주의 세력들로 알려져 있다.

전범자를 기리는 의식이 성대하게 펼쳐지는 것도 황당하지만 아베가 이들을 치켜세우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아베가 태평양 전쟁의 책임을 전면 부정한 채 오히려 역사적 광기를 정당화하는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종전조서에서 패전이나 항복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원폭 투하와 그로 인한 피해만 강조했던 일왕의 발언과 맥을 잇는 것이다.

전범에 대한 단죄는 2차대전 이후 동북아 질서의 근간이다. 아베가 전범을 옹호한다는 것은 전후의 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잘못된 국가관이다. 전쟁기 일본은 군국주의 광기와 전체주의적 오류에 빠진 채 소수의 집권 세력들이 일본 국민의 자유와 삶을 짓밟았던 대억압의 시기다. 그리고 2차대전을 뒤로하고 자유롭게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일본이 태어났던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일본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일본은 패전, 곧 치욕이라는 콤플렉스에 매몰돼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공물 논란조차 황당한데 전범을 순국자로 둔갑시키는 광기의 민족주의를 드러낸다는 것은 현대 일본의 수치요 아베의 무지성(無知性)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