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전기 전자부문에서 한 해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던 재계 31위 그룹 신원이 연매출 3800억원짜리 패션전문기업으로 재탄생한 건 2003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본업’인 패션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을 매각한 여파였다. ‘내실 다지기’에 전념해온 신원이 ‘공격 경영’을 다시 선언한 것은 2011년이다. 인수합병(M&A), 신규 브랜드 출시, 공장 증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대규모 투자는 신원에 ‘미래 성장동력’을 안겨줬지만, 재무적으로는 ‘걱정거리’를 남겼다.
[마켓인사이트] 신원, M&A·새 브랜드로 덩치키워…재무구조는 악화
○공격경영 3년…악화된 재무구조

2009년까지만 해도 신원의 재무구조는 탄탄했다. 매출 4446억원에 26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경쟁이 심한 섬유·패션업체치고는 영업이익률(6%)도 괜찮은 편이었다. 재무제표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신원은 최근 3년 동안 인터넷 유통사이트인 온맘닷컴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를 인수했고, ‘이사베이 드 파리’(중가 여성복)와 ‘반하트 디 알자바’(고급 남성복) 등 2개 브랜드를 내놓았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의류제조 공장도 증축했다. 여기에 든 돈만 1000억원이 넘었다.

덕분에 매출은 계속 늘어 작년에는 5896억원으로 확대됐지만, 수익성은 거꾸로 갔다. 2009년 326억원이었던 순이익은 지난해 -70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2009년 191억원에 불과했던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은 올 2분기 1838억원으로 9.6배나 늘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신원의 수익성이 악화된 근본적인 이유는 ‘베스띠벨리’ ‘씨’ ‘비키’ 등 여성복 트리오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재고 소진을 위해 할인율을 높인 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 및 개성공단 일시 생산 중단이란 악재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추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매각…M&A도 중단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신원은 올해 사업전략을 다시 ‘내실 다지기’로 되돌렸다. 2005년 ‘국내 1호 입주 기업’으로 들어섰던 개성공단 1공장 부지(약 8000㎡) 사용권을 매물로 내놓은 데 이어 전체 500여개 매장 중 8%가량인 40개를 정리하는 등 점포 구조조정도 했다.

2012년 인수한 ‘로메오 산타마리아’ 사업도 축소키로 했다. 이 브랜드는 지난해 2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다. 추가적인 M&A와 신규 브랜드 출시도 향후 3년 동안 자제하기로 했다. 지난해 발표한 식음료 사업 진출 계획도 보류하고, 사업성을 재검토하고 있다.

신원은 대신 베스띠벨리 등 ‘기존 브랜드 경쟁력 끌어올리기’와 ‘중국시장 공략’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길거리로 밀려난 여성복 브랜드들을 고급화해 백화점에 재입점시킨다는 구상이다. 남성복 ‘지이크’에 이어 여성복 ‘이사베이 드 파리’를 내보내는 등 중국 시장 공략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최완영 신원 최고재무책임자(CFO·상무)는 “2011년 이후 투자한 신규 브랜드와 해외공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는 만큼 앞으로 수익성은 개선될 것”이라며 “2009년처럼 연간 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체제가 되면 매년 100억원가량을 부채상환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박 회장 경영 키워드는 성경 속 ‘청지기 사명’

박성철 신원 회장(74)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큰아들 박정환 목사를 신원의 ‘사목’(社牧)으로 임명, 매주 두 차례 직원들을 상대로 성경 공부를 시킬 정도다. 박 회장 자신도 새벽 5시께 출근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성경에 나오는 ‘청지기 사명’이다.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기업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한양대 행정학과 졸업 후 7년 동안 산업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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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오동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