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 잡는다"
“그를 빼놓고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시스코를 설명할 수 없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체임버스 회장은 사물인터넷(IoT) 글로벌 1위 업체인 시스코를 19년째 이끌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둘러봐도 체임버스 회장만 한 최고경영자(CEO)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CEO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라는 수식어를 지닌 체임버스 회장은 난독증으로 고등학교 졸업조차 쉽지 않았다. 학습 부진과 친구들의 따돌림에 시달렸던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건 오기와 패기 덕분이었다. “장애물이 나를 비켜가기를 바라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좌절의 연속이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체임버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난독증으로 힘겨웠던 어린 시절

체임버스 회장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캐너와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의사였다.

“힘겨운 변화를 이겨내는 방법을 부모에게서 배웠습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어머니는 항상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교감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교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 역시 부모처럼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난독증으로 인해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유년 시절 그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구석에 앉아 있기 일쑤였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그는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해 학위를 땄다. 인디애나대 경영대학원도 나왔다. 성적도 우수했다.

“노력이었습니다. 엄청난 노력이었죠.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컸지만 스스로도 패배의식을 벗어던지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이때 느꼈습니다. 실패가 두렵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체임버스 회장은 난독증을 극복했지만 아직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듣는 것을 선호한다. 서류로 보고받는 것보다 구두로 보고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고객과 대화도 즐긴다. 고객과 대화하는 시간이 1주일에 30시간을 넘길 정도다.

체임버스 회장은 대표적인 명연설가다. 청중을 끌어들이고 설득력 있게 강연하는 CEO로 유명하다. 그는 한 번의 강연을 위해 수십 번 사전 연습을 한다. 강연의 어느 순간에서 청중을 바라볼지, 물을 마실지, 손짓을 할지 등을 꼼꼼하게 고민하고 준비한다. 이런 완벽주의에 가까운 준비는 난독증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며 만들어진 일종의 습관이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27세에 IBM에서 영업을 담당했다. 그리고 중소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1년 시스코 영업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옮긴 뒤 4년 만에 CEO 자리에 올랐다.

1995년 12억달러(약 1조2200억원)에 그쳤던 시스코 매출은 작년에는 486억달러로 성장했다. 고속 승진과 가파른 성장 비결에 대해 체임버스 회장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여기에 긍정적인 태도까지 더해지면 끊임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도전의식과 오기로 이뤄낸 고속 성장

시스코는 전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에 안도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시스코도 망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게 아닙니다.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죠.” 체임버스 회장은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여기에 맞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스코는 최근 20년간 10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했다. 자체적인 연구개발이 부족하면 외부에서 아이디어와 인력을 채워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신속하게 신제품을 개발하기 어려울 때도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

체임버스 회장은 “1990년대 초반 시스코는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시켜주는 장치) 업체였다”며 “당시 스위칭 기술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을 인수해 스위칭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시스코는 클라우드, 모바일 분야 등 사업 영역을 계속 넓혔다. 올 들어서도 악성코드 감지 보안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업체를 인수했다. 협업 솔루션 업체와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 등 비슷한 업종 기업을 지속적으로 물색 중이다.

모든 M&A가 성공한 건 아니었다. 체임버스 회장도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면 세 곳 중 한 곳은 실패로 끝난다”며 “2009년 인수한 비디오 카메라 업체 플립이 실패한 예”라고 말했다. 인수 후 캠코더 판매가 하락하면서 플립이 폐업했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비난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비난이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죠. 이런 태도는 CEO로서 강점일 수도, 약점일 수도 있지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M&A에는 사실 인력 영입이라는 목적이 크게 작용했다.

체임버스 회장은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소통을 위해 벽을 없애면 조직의 능률이 오른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시스코는 이 때문에 경영진도 일반 직원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조직원과 소통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출장길에서 만난 고객도 소통의 대상입니다. 고객과 대화를 통해 인수할 기업을 정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판단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거듭되는 변화 속에서 성장

그는 새로움 꿈을 꾸고 있다. 기술과 현실의 완벽한 조화가 그것이다.

체임버스 회장은 “앞으로 5년이 지나면 누군가를 직접 만났는지 혹은 원격 화면으로 만났는지 모를 정도로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며 “실물 크기와 동일한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해 수백만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회의 시스템인 ‘텔레프레즌스’가 대표적인 예다. 체임버스 회장이 시스코에서 출시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실제와 비슷한 가상회의 환경을 제공한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주차 공간을 알려주는 주차 센서, 소셜미디어 기능이 포함된 감시카메라 등도 시스코가 선보인 IT다. 시스코의 IT는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한다. 보행자가 없을 때는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전기를 절약하고 보행자가 있을 때만 가로등이 켜지는 식이다. 쓰레기통이 꽉 차면 관리 당국에 이 사실이 통보돼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수거 시점을 결정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그렇다고 체임버스 회장이 일벌레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일 3마일씩 조깅을 한다. “몸매 유지를 위해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에 흔들렸지만 어느 순간 오롯이 달리기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최근 전 세계 인력의 8%인 6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힌 체임버스 회장은 아직 은퇴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IT가 계속 발전하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변화와 이슈의 중심에 있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건 의미 있고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