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비관론자 됐나…KOSPI, 밑빠진 독
이만하면 ‘밑 빠진 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1조원 이상을 증시에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쩍하지 않는 코스피지수 얘기다. 지수가 2070선에 묶인 것은 기관의 집요한 매도 공세 탓이다. 펀드 환매에 대응 중인 자산운용사(투신)뿐 아니라 은행, 보험, 정부, 지방자치단체도 ‘팔자’ 행렬에 가세해 지수를 흔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관의 매도 공세가 장기화되면 코스피지수의 2100선 돌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관의 ‘묻지마 매도’

기관, 비관론자 됐나…KOSPI, 밑빠진 독
20일 증시는 8월 이후 증시 움직임의 축소판이었다. 이날 코스피지수 종가는 전날보다 0.08% 오른 2072.78. 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외국인의 매수세와 기관의 매도세가 팽팽히 맞선 하루였다. 장 초반만 해도 지수가 2082.21까지 오르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상승장은 길지 않았다. 2300억원어치에 달하는 기관의 ‘매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지수가 꺾였다. 오후 한때 2063.61까지 지수가 밀리기도 했다. 장 막판 외국인이 뒷심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지수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달 들어 기관은 1조2754억원어치의 매물을 쏟아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수액 1조3101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펀드 환매로 인한 자산운용사의 순매도액이 5953억원으로 가장 많았지만 보험(순매도 3495억원), 국가·지자체(1840억원), 은행(1624억원) 등도 일제히 주식을 팔아치웠다.

전문가들은 기관의 순매도 공세를 비정상적이라고 평가한다.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예금이나 채권 같은 안전 자산을 팔아 주식을 사는 게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어서다. 그만큼 향후 증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종목 선정은 기관의 실무자 몫이지만 주식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지는 혼자 결정할 수 없다”며 “전체적 분위기가 조만간 증시가 꺾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환매 물량보다 많은 매물을 내놓으면서 증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승선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처럼 신규 자금 유입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운신의 폭을 마련하려면 주식을 현금으로 바꿔 놓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형 수출주, 손해보더라도 팔자”

기관의 8월 순매도 종목 대부분은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한 대형 수출주다. 기관의 매도 행진을 ‘목표 수익률 실현’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8월 들어 기관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누적 순매도액 6588억원)다. 이날 삼성전자의 종가는 126만1000원으로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관이 이 종목으로 큰 재미를 보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순매도 2위 현대차(3028억원), 3위 현대모비스(1140억원) 등도 올 들어 주가가 꾸준히 ‘낮은 포복’을 이어왔던 종목으로 꼽힌다.

반면 순매수 종목은 이미 주가가 많이 뛴 내수주다. 한전KPS, LG생활건강이 상위권에 자리한다.

전문가들은 기관의 예측처럼 본격적인 약세장이 찾아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분간 상승장을 기대할 만한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류 센터장은 “다음 정책 모멘텀은 예산안이 나오는 9월 말에야 기대할 수 있다”며 “추가 금리 인하 여부가 결정되는 금융통화위원회도 10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려도 유럽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는 등 악재가 많다”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