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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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업계의 시선이 출범 1년을 맞은 게임회사 NHN엔터테인먼트로 향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게임회사도 가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8월1일 네이버에서 분리·독립해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한 기업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미국 패션·잡화 유통업체, 중국 온라인 유통업체, 일본 쇼핑몰 호스트 업체, 한국 보안 솔루션 업체 등이다. 일반적인 게임기업의 M&A 대상과는 크게 다르다.

이에 대해 NHN엔터는 웹보드 게임 규제와 모바일 게임 경쟁 심화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7일 7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올 2분기 경영실적과 함께 ‘국가 간 전자상거래’와 ‘정보기술(IT) 인프라·솔루션’ 시장에 뛰어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는 NHN엔터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준호 NHN엔터 회장 겸 이사회 의장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검색 기술로 오늘의 네이버를 만든 그가 NHN엔터에서도 큰일을 낼 것이란 뜻이다. 조용하지만 야심이 큰 그의 경영스타일로 볼 때 NHN엔터가 단순한 게임회사로 머물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검색 전문가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혹은 이전엔 ‘네이버 최고운영책임자(COO)’ 같은 직함으로 불렸지만 그것보다 그를 잘 설명하는 수식어는 언제나 ‘국내 최고의 검색 전문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3학번인 그는 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1997년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가 됐다.

미국에서 구글이 설립된 게 1998년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전부터 검색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검색 시장을 장악해야 인터넷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회장은 “당시 국내에는 인터넷 검색과 관련한 연구 자료가 거의 없어 외국 논문을 뒤지며 공부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수년 동안 검색만 파고들었다. 1994년 연구개발정보센터에서 정보검색시스템 ‘KRISTAL-Ⅱ’를 개발했고, 검색을 더 알고 싶어 1994년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 코넬대의 검색 석학 게오르그 셀튼 교수를 찾아가기도 했다.

1999년은 검색 전문가로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해다. 그가 개발한 자연어 검색 기술을 엠파스에 독점 제공하면서다. 자연어 검색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엠파스는 국내 검색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야후나 라이코스를 위협하는 경쟁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술 제공의 대가를 놓고 엠파스와 갈등이 생겼다. 그때 이해진 네이버닷컴 사장이 찾아왔다. 네이버는 이 회장이 검색기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독립법인을 만드는 데 10억원을 투자하고, 월 4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0년 2월 창업한 서치솔루션이다.

2001년 서치솔루션은 네이버에 인수됐고, 이 회장은 네이버(당시 NHN)의 대주주가 됐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연구에 전념했다. 하지만 2005년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복귀해 국내 검색벤처 ‘첫눈’을 인수하는 등 이후 네이버의 검색을 책임졌다. 자체 검색 기술 없이 1999년 설립된 네이버는 이 회장의 합류로 국내 최고의 검색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술과 도전정신 중시

검색 전문가인 이 회장이 게임회사 NHN엔터를 맡은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분리 전에 이미 NHN엔터 전신인 네이버 게임사업부(한게임)의 운영을 총괄하고 있었다. 다만 여느 게임사 경영자와 다른 점이라면 ‘기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게임을 즐기지는 않지만 게임은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분야”라며 “게임에 기술을 접목한다면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NHN엔터 출범과 함께 그는 ‘게임과학연구실’을 만들었다. 단순 트래픽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빅데이터를 이용한 체계적인 분석으로 게임의 흥행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스마트폰 게임인 ‘야구9단’에 알고리즘을 적용, 매출을 13% 높인 것 등이 그런 예다. 신사업으로 뛰어든 국가 간 전자상거래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을 묶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해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교수로서 회사를 창업해 검색 사업에 뛰어들고, 검색 전문가로서 다시 게임회사 경영을 맡아 새로운 영역에 나서는 것도 모두 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그의 도전정신과 맞물려 2000억원대의 현금성 자산을 가진 NHN엔터가 앞으로 파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내 ‘건강 전도사’ 자처

‘은둔의 경영자’지만 이 회장은 외향적인 성격이다. 평소에도 직원들과 식사나 술자리를 즐긴다. 직원들에게도 본인을 ‘회장님’이라고 부르기보다 그냥 ‘박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소탈하다.

그는 내부 소통을 늘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콘셉트를 세우고 이름 붙인 ‘슈퍼플랫’이란 회의실을 만들고 큰 원형 탁자를 놓아두었다. NHN엔터 관계자는 “보통 기업 회의실은 상급자가 앉아 보고를 받는 상하 구조인데, 원탁에서는 상석이 없어 누구나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공대 출신이지만 인문학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IT업계에서는 대표적인 와인 애호가 중 한 명이다. 요즘은 사내에서 ‘운동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갱년기의 위기를 운동으로 이겨낸 경험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건강해야 창의적인 생각도 나오고, 가정과 회사가 모두 화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올봄에는 자전거 출퇴근자 20명을 뽑아 120만원 상당의 자전거를 선물했는데, 이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깜짝 이벤트였다. 그 역시 1주일에 2~3번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주말엔 지인이나 직원들과 함께 한강 라이딩을 즐기는 마니아다.

■ 이준호 회장 프로필

△1964년생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입학(1983년) △KAIST 전산학과 대학원(1987년) △KAIST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1993년) △연구정보센터 선임연구원(1994년) △숭실대 컴퓨터학부 부교수(1997년) △서치솔루션 창업(2000년) △NHN CTO(2005년) △NHN CAO(2007년) △NHN COO(2009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이사회 의장(2013년 8월~현재)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