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强軍의 조건
군복무를 마친 한국 사람이라면 군대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예전에 비해 나라 살림이 한결 윤택해져 먹고 자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군대 하면 아직도 ‘춥고 배고픔’이 맨 먼저 떠오른다. 구타와 기합도 다반사였다. 최근 군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와 가혹행위 사건을 보면 그런 구태는 여전한 모양이다. 병영문화 개선과 복무기강 확립으로 불상사를 줄일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하겠지만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근본적인 방책은 아닌 것 같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사정에서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여러 가지 사회 조직 중에서 군대가 가장 강력한 통제 조직이지만, 군대도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징집된 젊은이들에게 자발적 협조와 충심 어린 복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불상사도 바로 이로부터 연유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세월 가기만을 기다린다. “세월아 구보해라, 청춘아 동작 그만”이라는 말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받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징집된 병사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충분히 클 수 있다.

대안은 시장 임금을 지급하고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지원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전쟁 시에는 물론 징병제로 전환된다. 자발적으로 군인이 됐으니 징집된 군인에 비해 훨씬 더 충성스런 복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재산권을 가지므로 구타나 가혹행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징병제보다 한결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니 군 당국도 인력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말도 많은 병역 비리도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직업을 택하지 않을 것이므로 병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가 정원 미달로 곤경에 처한 사례는 없다. 고층 건물의 외벽을 청소하는 일이 군복무보다 덜 위험하다고 할 수도 없다. 현대전이 첨단 무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병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도 예전보다 줄었다. 또한 지원제 하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사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랑스러운 경력이 될 것이다. “돈으로 병역 의무를 산다”는 일각의 비판은 의미 없는 것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경제학자들은 동일한 전력을 유지하는 데 지원제가 징병제보다 더 적은 비용이 든다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높은 인력이 징집되지 않고 다른 생산 활동에 종사함으로써 나라에 보탤 수 있는 부의 증가가 상승하는 국방부의 비용을 능가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보이지 않으므로 비교하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평화 시의 징병제는 노예의 군대다”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병제를 폐지했지만, 증가하는 병력 유지비가 난제라는 보고서도 있다. 군인 연봉도 높아져야 다른 산업과의 경쟁에서 병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제에 따른 장기적 비용 추세를 정밀하게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대규모 병력을 해외에 주둔시키는 미국은 직업 군인이 많아 병력을 유지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나라는 아니다. 따라서 핵심 전투 병력은 지원제로 충원해 전력을 강화하고 유사시에 동원할 병력은 평상시에는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정기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도록 해 예비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 지금의 21개월 의무 복무로 강군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제는 사람들의 유인에 맞춰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는 것과 그에 따른 비용 간의 문제를 냉정하게 저울질해봐야 한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