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인인증서 탁상공론
지난 3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가 입은 코트가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자 때아닌 ‘액티브X(웹브라우저 인터넷익스플로어 전용 확장 프로그램)’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입은 옷을 사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하지만 (액티브X를 깔아야 설치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매에 실패했다고 한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박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약속하자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28일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을 내놨다.

중국에서 직접 한국 의류를 거래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까.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거래되는 의류를 운송하는 백세물류의 권영소 이사는 “액티브X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근본 문제는 ‘짝퉁’을 양산하는 중국 유통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송이 코트’ 같은 의류가 중국에서 유행할 것 같으면 중국 도매상들이 적당량을 사 간다. 대부분 직접 한국에 와서 사 가기 때문에 공인인증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초기 물량을 자국 온라인 쇼핑몰에 비싸게 풀고 동시에 모조품을 찍어낸다. 열흘도 되지 않아 값싼 복제품이 쏟아진다. 결국 한류열풍에 돈을 버는 건 중국 업체들뿐이다. 중국 모 쇼핑몰은 한국 의류 복제품을 팔아 ‘떼돈’을 번 뒤 최근엔 아예 전지현 씨를 전속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은 디자인권 등록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중국에 수출하기 전에 의류의 디자인권을 먼저 중국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일단 등록된 디자인권은 적극 보호해주는 추세여서 중국 업체의 무분별한 복제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만일 정부가 ‘공인인증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중국에서 한국 의류의 유통 실태를 점검했으면 어땠을까. 실상을 제대로 인식한 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 이 문제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 공무원들도 현장을 제대로 챙겨야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다. 탁상공론 속에 우리 디자인을 가지고 중국 업체가 배를 불리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남윤선 상하이/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