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온도가 3도인 농업과학원 유전자원센터에서 직원들이 점퍼를 입고 종자를 옮기고 있다. 농업과학원 제공
실내온도가 3도인 농업과학원 유전자원센터에서 직원들이 점퍼를 입고 종자를 옮기고 있다. 농업과학원 제공
“가는 길에 흔들리면 절대 안 되니까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주세요. 내부 온도는 20~25도 사이를 꼭 유지해야 합니다.”

지난 12일 오전 9시 경기 수원시 서둔동의 국립농업과학원. 생물자원부에 10t짜리 이삿짐 트럭이 들어서자 김남정 연구관의 몸놀림이 바빠졌다. 이날은 김 연구관이 연구하고 있는 식용 곤충 ‘거저리’ 5000만마리가 전북 전주혁신도시에 있는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농업과학원 직원들이 거저리 상태 점검을 마치자 물류회사인 CJ대한통운 직원 5명이 트럭에 꽉 차도록 거저리 상자를 옮겨 실었다. 김 연구관은 “거저리는 작은 온도 변화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기존 사육환경과 같은 온도와 습도를 맞춰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동원된 차량은 내부에 ‘충격 흡수장치(쇼크 업소버)’를 장착해 흔들림을 최소화한 ‘무진동 차량’이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항온·항습 기능도 갖췄다. 대당 가격은 1억원이 넘는다.
직원들이 토종벌이 벌통에 들어오는 것을 야간까지 기다렸다가 포장하고 있다. 농업과학원 제공
직원들이 토종벌이 벌통에 들어오는 것을 야간까지 기다렸다가 포장하고 있다. 농업과학원 제공
생물자원을 연구하는 농업과학원의 전주혁신도시 이전은 지금까지 공공기관 이전 작업 중 최대 규모다. 5t 트럭 1900대 물량으로, 기존 최대였던 식품의약품안전처 충북 오송 이전 때의 1100대보다 70% 이상 많다. 지난달 25일 시작돼 오는 31일까지 계속되며 총 6400여명이 참여한다. 이전비용만도 32억원이 든다.

생물자원의 안전한 운송이 관건인 만큼 준비 작업도 치밀했다. 이승돈 농업과학원 청사이전추진단 팀장은 “연구관들이 6개월 전부터 최적의 이동경로와 환경을 연구했다”며 “사람이 일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일반 이사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생물자원의 상태와 기상 상태에 따라 일정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야간 꿀벌 운송 대작전’도 벌였다. 토종벌 37만5000마리를 야간에 포장을 시작해 이튿날 새벽이 되기 전 운송을 마쳤다. 이 팀장은 “벌은 낮에 꽃을 찾아다니다 밤에 벌집으로 들어오는 습성이 있다”며 “벌이 모두 들어오기를 기다려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야간에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달 하순에는 양봉으로 키우는 사양벌 320만마리를 같은 방법으로 운송할 예정이다.

유전자원센터에 있는 미생물을 옮기기 위해서는 초저온 냉동고를 활용했다. 2만점의 미생물을 영하 80도의 냉동고에 담아 옮겼다. 이날 직원들은 유전자원센터의 내부온도가 3도에 불과해 겨울점퍼를 입고 일했다. 지난 8일에는 ‘낚시대전’이 열리기도 했다. 연구에 사용되는 어류를 옮기기 위해 족대와 뜰채가 등장했다. 8㎏이 나가는 1m짜리 잉어를 잡기 위해 4~5명이 달려들었다.

농업과학원은 보유 중인 생물무기를 운송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도 밟고 있다. 농업과학원에서는 곡물 등을 썩게 하는 병충해를 무기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팀장은 “연구원들은 일상적으로 만지는 곤충도 군용으로 등록돼 있다 보니 절차가 복잡하다”며 “기존 시설 폐쇄 허가를 받은 뒤 신규 시설 사용허가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했다.

농업과학원 이전을 맡은 이봉권 CJ대한통운 팀장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규모가 큰 정부기관 이전을 맡은 적은 있지만 실험 생물 등 특수 물품을 대량으로 나르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전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해 CJ대한통운의 운송능력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