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 등 도자기 회사들은 통상 봄과 가을에 혼수 ‘홈 세트’ 신상품을 한두 개 이상 내놓는다. 하지만 올해는 홈세트 신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국산 도자기 수요가 크게 줄어든 데다 중금속 검출 논란 등 홍역을 치른 탓이다. 기업 매각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70년이 넘는 ‘업력’을 자랑해 온 국내 도자기 제조업계가 신음하는 이유가 뭘까. 고가품 시장에서는 해외 브랜드에 밀리고, 저가품에선 중국산 인도네시아산 등에 치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크다.
국산 도자기의 굴욕…'안방' 60% 뺏겼다
○내수시장 60% 이상 뺏겨

국내 도자기 시장은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내 ‘빅3’로 불리는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젠한국 등 3사는 지난해 1000억원대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외국산 점유율이 6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도자기는 2011년 489억원이었던 매출이 2012년 465억원, 2013년 404억원으로 줄었다. 행남자기 역시 2011년 536억원에서 2012년 460억원, 2013년 438억원으로 급감했다.

수익성도 좋지 않다. 지난해 행남자기는 2년간의 적자에서 벗어났지만 영업이익이 12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1분기에 다시 2억6000만원 영업적자를 냈다. 한국도자기는 지난해 3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위 업체인 젠한국만 매출이 늘었다. 젠한국은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의 막냇동생인 김성수 회장이 2005년 독립해 나와 만든 회사다. 하지만 연간 매출(지난해 178억원)이 200억원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매출 증가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악성 루머에 시달려

최근 시장에 ‘행남자기가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대주주들이 주식을 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회사 측은 “신규사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도자기는 얼마 전 한 방송사 프로그램이 ‘납이 검출됐다’고 보도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매출이 40%가량 감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방송에서 공식 장비가 아닌 작은 키트를 사용해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모든 제품은 한국세라믹기술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검증을 거친 안전한 제품”이라고 해명했으나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시장 변화에 대응 못 해

몇 년 전부터 도자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신혼부부가 크게 줄었다. 예컨대 행남자기의 홈세트 판매 비중은 10여년 전 70%에서 최근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식구 수가 줄고 외식문화가 자리잡은 탓이다.

최근 식기 소비패턴도 저렴한 제품을 사다 쓴 뒤 자주 바꾸는 쪽으로 바뀌었다. 대형마트들은 중국산 제품을 많이 팔고 있다. 도자기를 고수하는 소비자들은 포트메리온, 코렐, 로열앨버트, 로열코펜하겐 등 해외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자기 회사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조직 문화나 경영 방침도 보수적”이라며 “질질 끌려다니다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고 말했다.

○‘도자기 종주국’ 되찾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도자기 회사들이 최근 내놓은 타결책은 ‘제품 고급화’와 ‘해외시장 개척’이다.

한국도자기는 최고급 브랜드 ‘프라우나’에 기대를 걸고 있다. 프라우나는 영어 ‘profound(심오한)’와 스페인어 ‘una(하나)’의 합성어다. 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하는 일반 본차이나보다 3배 강한 최고급 ‘파인 본차이나’ 소재를 썼다. 제품 표면엔 수작업으로 고가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부착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에 수출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독일 전시회에선 500만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젠한국도 영국 친환경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세워 고가품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전통 도자기업체 광주요는 장인이 문양을 직접 넣은 최고급 프레스티지 라인 ‘뉴 클래식’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행남자기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이 회사는 로봇청소기 제조 판매, 태양전지 및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