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화금융클래식에서 임지나가 골든베이골프&리조트 5번홀 러프에서 샷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한화금융클래식에서 임지나가 골든베이골프&리조트 5번홀 러프에서 샷을 하고 있다.
H기업의 임원 L씨는 지난주 1박2일로 충남 태안 골든베이골프&리조트를 찾았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라운드에 나선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80타대 실력인 L씨는 “러프로 가면 무조건 1벌타를 받고 페어웨이로 꺼내서 치시기 바랍니다”라는 캐디의 말을 들었지만 속으로 ‘룰대로 쳐야지 무슨…’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몇 차례 러프를 다녀온 L씨는 캐디 말대로 공을 페어웨이로 옮겨 놓고 치기 시작했다. L씨는 “분명히 공이 페어웨이 옆 러프로 간 걸 보고 갔는데 찾을 수 없었다”며 “공이 있더라도 도무지 볼을 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러프 최고 20㎝…눈앞에서 공 잃어

골든베이리조트를 방문한 골퍼들은 라운드 후 우스갯소리로 “‘공 값’을 그린피에서 빼달라”고 요구하곤 한다.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깊은 러프로 잃어버린 공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의 대명사가 된 ‘죽음의 러프’는 31일 막을 올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을 위해 조성됐다. 대회를 주최한 한화그룹에 따르면 러프의 평균 길이는 15㎝며 어떤 곳은 최대 20㎝로 거의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한화 관계자는 “US오픈이나 브리티시오픈처럼 다양한 러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수들에게 주고자 1년 내내 코스 관리를 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깊은 러프 대처법과 탈출 요령을 익혀 세계 어느 코스에서든 경쟁력을 갖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골든베이 잔디는 양잔디가 아니라 한국 잔디 품종인 중지인 점을 감안해 좀 더 깊게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러프에 대한 호불호 극명하게 갈려

아마추어들은 러프에서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어떤 이는 “앞으로 대회 전에는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근 이곳을 찾은 한 골프 관련 업체 관계자는 “페어웨이를 살짝 벗어났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해저드에 빠진 것과 같은 것은 골프라고 할 수 없다”며 “잘 친 샷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고 그냥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KLPGA투어의 한 유명 선수는 “무슨 이 따위 코스가 있느냐”고 대놓고 험담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는 “러프에서 샷을 하고 나면 손목이 얼얼하다”며 “이 대회를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손목 통증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반면 이 코스를 선호하는 선수들도 꽤 많다. 김효주 선수의 부친 김창호 씨는 “US오픈 러프는 무릎까지 오기도 한다”며 “이 정도의 러프를 탓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스 셋업을 찬성하는 쪽도 현재 홀마다 한 명만 배치된 ‘포어캐디’(볼이 떨어진 위치를 확인해주는 사람)를 2명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한다. 한 선수는 “포어캐디가 없는 반대쪽으로 공이 떨어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소연했다. 김효주도 지난해 러프에서 공을 2개나 잃어버렸다.

◆최고의 상금 대회…우승 상금 3억원

이 대회는 깊은 러프와 함께 국내 최고 상금 대회로 유명하다. 이미 2012년부터 총상금을 12억원으로 올려 남녀 통틀어 최고 상금 액수를 자랑했다. 최근 한국오픈이 총상금을 10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려 이 대회와 같아졌다. 주최 측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뛰는 유명 선수들에게 별도의 초청료를 주지 않더라도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상금액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주최 측 의도대로 ‘해외파’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일본 LPGA투어 상금랭킹 1위 안선주(26)를 비롯 전미정(32), 강수연(38), 나다예(27) 등 ‘일본파’와 지난주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뛰었던 최나연(27·SK텔레콤)과 김인경(26·하나금융그룹), 유선영(28) 등 ‘미국파’들이 나온다. 지난해 2월 혼다LPGA타일랜드에서 박인비와 우승 경쟁을 벌인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가른(19)도 나온다.

우승 상금 3억원은 올해 KLPGA투어 상금왕 경쟁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김효주(19·롯데)는 4억7017만원으로 상금랭킹 선두를 달리고 있고 장하나(22·비씨카드)는 2억8819만원으로 2위다. 3억원을 거머쥔다면 투어내 어떤 선수라도 단숨에 상금왕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