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그룹 가운데 세 곳이 ‘10대 로펌’ 수준의 사내변호사 인력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에서 준법 이슈가 부각되고 해외계약 분쟁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계에서 사내변호사들의 위상도 높아져 이해관계가 갈리는 규제를 놓고 로펌 변호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독자적인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 세 곳 법무팀 ‘10대 로펌’보다 커

[Law&Biz] 힘 세진 사내변호사…삼성·LG·SK '10대 로펌' 규모
29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김상균 삼성전자 법무팀장(사장)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500여명의 변호사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719명)보다 적지만 2위인 법무법인 광장(400명)보다는 많다. 변리사 법무사 등 변호사가 아닌 법무 인력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

다른 주요 기업의 법무팀 인력도 웬만한 로펌 못지않다. LG그룹은 이종상 (주)LG 법무·준법지원팀장(부사장)을 중심으로 약 300명의 변호사 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SUPEX추구협의회’의 윤진원 윤리경영위원회 법무팀장(부사장)을 필두로 120여명의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 수 기준으로 국내 로펌 10위인 법무법인 동인(102명)보다 규모가 크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20~30명 수준이며 해외 근무 인력까지 합치면 1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기업보다 법무 인력이 비교적 적은 것은 로펌에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나름의 경영상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로펌 변호사가 송무(소송)나 자문을 주로 한다면 사내변호사는 계약서 검토, 준법경영 지원 등이 주요 업무다. 복잡한 송무나 자문이 필요할 때 일을 맡길 로펌을 선정하는 것도 사내변호사다. 한 로펌 변호사는 “사내변호사가 로펌에 일을 주기 때문에 평소에 로펌 변호사보다 ‘갑’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소송 업무도 예전에는 로펌에 일임했다면 지금은 사내변호사가 이것저것 체크하고 간섭하기 때문에 로펌이 더 긴장하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Law&Biz] 힘 세진 사내변호사…삼성·LG·SK '10대 로펌' 규모
◆사내변호사 출신 CEO도

자연히 법조계에서 사내변호사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내변호사의 전문성이 로펌이나 단독개업 변호사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총수의 개인변호사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사내변호사의 수가 늘어나는 한편 주요 기업의 법무참모 직급이 부사장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최근에는 이런 시각이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실제로 김상헌 네이버 대표, 이명재 한국알리안츠생명 대표, 이석우 카카오 대표 등은 사내변호사 출신으로 한 단계 이상 내부 승진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런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사내변호사가 법조계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사내변호사가 업무처리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발견할 경우 조직의 장이나 집행부, 다른 관계 부서에 말하거나 기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변호사 윤리장전 조항을 신설하려고 했으나 사내변호사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사내변호사의 소송 수임 건수를 연간 10건으로 제한하는 규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한 사내변호사 단체가 이런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의견서를 대한변협에 제출했다.

한 로펌 변호사는 “사내변호사는 절반 정도가 외국 변호사여서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는 2~3년 뒤에 외국 로펌에 기업 일감이 상당수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며 “사내변호사와 로펌·개인 변호사 간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병훈/최진석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