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기업(원사업자)이 거래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하다며 중소 협력업체(수급사업자)에 설계도면이나 작업공정도 등을 요구하는 행위가 사실상 금지된다. 협력업체의 제조원가 자료를 요구할 수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당장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경영지도 위한 자료 요구도 금지

대기업, 협력사에 원가내역 요구 못한다
현행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시공절차 매뉴얼이나 설계도면, 생산원가내역서 등 기술자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대신 원사업자가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사유가 정당함을 입증하면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기존 심사지침은 이렇게 기술자료 제공 요구를 허용하는 아홉 가지 사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를 네 가지로 줄였다. 일부 원사업자들이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일부 사유를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해 협력업체 기술을 탈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이 거래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부품 승인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협력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행위는 앞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부품의 사양을 점검하거나 자사 제품에 맞는 규격인지 확인하는 것을 넘어 부품 도면 등 구체적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하도급 계약 시 가격을 정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협력업체의 원가내역 자료를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이 협력업체 원가에 최소한의 중간 이윤만 붙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기술이나 경영노하우를 전수·지도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관계 기관에 허가를 요청하거나 신고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술자료를 요구해서도 안된다.

○공정위 “매년 실태조사”

이에 따라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사유는 제조-위탁 목적상 불가피한 네 가지 경우로 한정된다. 우선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공동으로 특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특허 출원을 위해 필요한 경우다. 공동으로 기술개발 약정을 체결하고 약정 범위 내에서 필요한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경우에도 허용한다. 하도급대금 조정 협의 시 대금 인상폭 결정과 직결되는 원재료의 원가 비중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제품에 발생한 하자의 원인규명을 위해 요구하는 경우 등도 포함된다.

이 네 가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엔 대기업이 기술자료 요구가 불가피함을 서면으로 입증해 협력업체에 교부해야 한다. 협력업체는 대기업이 제시한 사유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엔 기술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거절이 어려울 경우엔 공정위에 신고할 수 있다. 선중규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매년 실태조사를 벌여 불공정거래 사례가 적발되면 해당 기업에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