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실패한 여름휴가 에피소드
H건설 분양기획팀 막내 안모 대리(34)는 요즘 ‘손등에 불’이 떨어졌다. 여름휴가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한 클릭 전쟁이 시작돼서다. 팀 선배들이 휴가 일정을 늦게 확정한 탓에 안 대리의 휴가 날짜는 지난주에서야 결정됐다. 성수기 중의 성수기인 8월 둘째주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비행기표와 호텔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부랴부랴 노트북 즐겨찾기에 ‘투어’로 끝나는 인터넷 사이트 10개를 등록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들락날락하며 표를 구하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안 대리는 “애타는 심정으로 클릭을 하는데 취소표가 안 뜨고 있다”며 “여름휴가를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한 달치 월급과도 안 바꾼다는 게 여름휴가다. 그러나 마음대로 날짜를 잡기도 힘들고, 계획을 잡았다고 해도 맘놓고 쉴 수 없는 게 김과장 이대리들의 처지다. 이번주 ‘김과장&이대리’는 하급 직원들의 눈물 나는 여름휴가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부장님과 함께 보낸 휴가에 스트레스↑

대기업 기획부 강모 대리(35)는 결혼 후 첫 여름휴가를 부장과 함께 보냈다. 엄밀히 말하면 부장의 목소리와 함께다. 강 대리는 부인과 함께 이달 초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제주공항에 내려 잠시 꺼놨던 휴대폰을 켜자마자 친숙한 회사번호가 휴대폰 액정에 떴다. 강 대리는 ‘혹시라도 회사 내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나’ 싶어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더니, 걸려온 전화는 엑셀 방법을 묻는 김 부장의 전화였다.

강 대리는 평소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잘 다뤄 팀 내에서 문서 작성을 도맡곤 했다. 김 부장은 ‘틀고정이나 정렬 방법’ ‘함수 공식’ 등을 전화로 시시콜콜히 물어댔다. 아무리 엑셀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전화로 가르쳐주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법. 김 부장의 전화가 하루에 수차례 걸려오자 옆에 있던 부인이 짜증을 냈다. “제주도 여행길에서 엑셀 얘기를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후배의 휴가는 좀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형 유통업체에 다니는 한모 대리(32)는 이 같은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상사에게 아예 ‘거짓말’을 한 케이스. 휴가 기간 집에서 쉴 계획이지만 ‘스페인 여행을 간다’고 말한 것이다. 만에 하나 전화가 걸려올 경우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여행의 콘셉트가 ‘내려놓기’라서 휴대폰 로밍도 안 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문제는 휴가 후다. 평소 남의 일에 관심 많기로 유명한 부장을 포함한 직장 상사들이 스페인 여행의 일화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해서다. 대충 얼버무리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가 터졌다. 다음달 스페인 여행을 가는 팀장이 한 시간 강의를 부탁한 것이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이라 매끄러운 여행 일정을 만들고 싶어하는 팀장의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는 한 대리.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주요 여행 코스 위주로 브리핑용 공부를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 엄청 받습니다.”

면세점 구매 부탁은 최고의 민폐

중견기업 마케팅팀 김모 대리(31)는 전 직장에서 겪었던 휴가 스트레스를 떠올리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남달리 도전의식이 강한 김 대리는 지난해 여름 히말라야의 해발 8091m짜리 안나푸르나로 여행 계획을 잡았다. 들뜬 마음으로 스케줄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같은 팀의 ‘마녀 상사’가 찬물을 끼얹었다. 김 대리에게 인터넷 면세점에서 ‘나인웨스트’ 구두를 사 달라고 부탁한 것. 공항에서 팀장의 구두를 받아든 김 대리는 여행 내내 구두를 신줏단지 모시듯 챙겨야 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했는데 국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마녀 팀장이었다. 자기 생일이라며 면세점에 샤넬 매장이 있으면 귀걸이를 사오라는 주문이었다. 김 대리는 “다행히 샤넬 매장은 없었지만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며 “결국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나중에 회사도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황금연휴 선점한 신입이 얄미워

사실 ‘어디로 떠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언제 가느냐’다. 시기에 따라 비행기표와 호텔비가 천차만별이다. 일정을 두고 치열한 눈치 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 B사 인사팀 ‘넘버2’ 박모 차장(42)은 지난달 신입사원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 경우다. 여름휴가 시작 전 팀장은 팀원들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부터 휴가 날짜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박 차장은 그래도 내심 ‘황금연휴는 내 몫으로 남겨두겠지’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박 차장과 1~2년 함께 지낸 대리급들은 마치 짠 듯 7월 말~8월 초 기간을 피해 휴가 날짜를 제출했다. 그런데 입사한 지 며칠 안된 신입사원이 일을 냈다. 7월 말~8월 초 황금휴가 시즌에 떡하니 1주일 휴가를 낸 것. 팀내에서 소리 없는 눈총이 쏟아졌지만 신입사원은 당당했다. 박 차장과 팀원들은 “아무리 세대가 바뀌었지만 어떻게 신입사원이…”라며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한 전자업체에 다니는 최모 주임(30)은 휴가 때문에 울분을 삼킨 경우다. 그는 올여름 가족들과 동남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휴가비를 아끼려고 저가 항공권도 예매하고 리조트까지 예약을 싹 마쳤다. 그런데 휴가를 딱 1주일 앞두고 팀장이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최근 출시한 제품에 프로모션 행사기간이 걸렸는데, 그게 다음주입니다. 미안하지만 다른 일정은 다 취소해 주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위약금을 물어가며 항공권 등을 취소했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 후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 상사들이 행사 일정을 당초 계획에서 바꿨다는 것. 자신들의 휴가 기간과 안 겹치게 미루다가 최 주임 일정에 맞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휴가철이면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경남 거제에 있는 대형 조선소 시설관리팀 이모 과장은 7월 말~8월 초 휴가 성수기가 두렵다. 조선소에선 8월 초 직원 대부분이 2주가량 휴가를 쓴다. 그러나 시설관리팀은 이때 1년 동안 미뤄온 도로정비, 전기배선 시설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장은 “남들 놀 때 못 노는 것도 서럽지만 올해는 휴가기간에 대형 크레인 설치 공사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서러움과 함께 부담감까지 겹쳐 더 힘들다”고 말했다.

황정수/안정락/김은정/강경민/김대훈/추가영 기자 hjs@hankyung.com

'명량' 영화티켓 증정 이벤트

"내가 만난 최고·최악 상사 스토리 응모하세요"

[金과장 & 李대리] 실패한 여름휴가 에피소드
“맞아요, 우리 회사에도 똑같은 사람 있어요. ㅋㅋㅋ” “완전 공감. 속이 다 시원하네요! T_T”

한국경제신문의 화요기획 ‘김과장&이대리’에는 매주 이런 댓글들이 적잖게 달립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잔잔하고 맛깔나게 전달하는 기사를 보고 수많은 김과장 이대리가 보내는 관심과 애정의 표현입니다.

2008년 첫 회를 시작한 ‘김과장&이대리’가 올해로 7년째를 맞았습니다. 이 기획물은 다른 언론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장수코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한경은 이번주 독자 여러분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아이디어 공모전입니다. 주제는 리더십. 그래서 선물도 리더십의 대명사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명량’의 관람 티켓으로 마련했습니다.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이 이끈 1597년 명량대첩을 재현한 국내 최초 해상전투 영화입니다.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진구, 이정현, 김명곤 등 연기파 배우가 총출동하는 화제작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지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응모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래 주제 중 하나를 골라 독자 여러분께서 직장에서 경험했던 사연을 적어 tardis@hankyung.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1인당 두 장씩, 총 300장을 드립니다.

● 응모 주제(택1)
(1)내가 만났던 최고의 상사&최악의 상사
(2)나를 감동&절망시킨 상사의 말 한마디
(3)선배 돼보니 이런 후배 힘들더라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꼭 적어주세요. 당첨자께는 이메일로 영화예매권을 보내 드립니다. 개인정보는 예매권 발송 직후 폐기합니다.

●접수된 사연은 응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익명으로 재구성해 김과장 이대리의 기사 소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