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두 KAIST 교수가 연구소에서 날숨센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합물을 살펴보고 있다. KAIST 제공
김일두 KAIST 교수가 연구소에서 날숨센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합물을 살펴보고 있다. KAIST 제공
“어르신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때 병을 찾아내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죠.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집에서도 쉽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7일 대전 KAIST에서 만난 김일두 KAIST 신소재 공학과 교수는 최근 개발 중인 날숨센서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날숨센서는 음주측정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장치다. 잠들기 전에 음주측정하듯 진단장치를 한 번 부는 것만으로도 질병에 걸렸는지 판단이 가능하다. 조금 과장하면 집에 주치의 한 명을 데리고 사는 꼴이다. 병원까지 가기 귀찮았던 사람들도 몸의 이상징후를 간단하고 빠르게 파악해 병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날숨으로 질병 진단

날숨으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인체가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내뿜는 가스 덕분이다. 인간이 숨을 쉬면서 내뿜는 아세톤, 톨루엔, 일산화질소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 가스는 각각 당뇨병, 폐암, 천식의 생체표식인자다. 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날숨센서는 사람의 호흡가스 속에 포함된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를 정밀하게 분석해 질병의 유무와 종류를 판단한다.

날숨센서 제작에는 첨단 나노섬유 기술이 사용됐다. 플라스틱 등 점도가 높은 고분자 물질을 주사기로 쏘는 방식으로 아주 얇은 나노 실을 만든다. 이 고분자 물질 속에는 산화주석 등 금속산화물이 이온 형태로 녹아있다. 이후 만들어진 나노 실을 고온에서 태우면 고분자 물질은 제거되고 금속 산화물만으로 이뤄진 반도체 섬유를 얻을 수 있다. 반도체 섬유에 가스 분자가 달라붙으면 저항값이 달라지는데 이게 센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문제는 어떤 가스라도 반도체 섬유의 저항값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김 교수는 특정 가스에만 반응하는 촉매를 반도체 섬유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예를 들어 플래티늄 촉매가 사용된 반도체 섬유는 아세톤 가스와 반응할 경우에만 저항값이 달라진다. 당뇨병의 경우 날숨에 포함된 아세톤 농도가 높아지는데 플래티늄 촉매를 이용해 이를 판별할 수 있다. 센서에 선택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웨어러블 헬스기기로

기존의 당뇨병 진단장치는 바늘로 혈액을 채취해 혈당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바늘로 인한 통증과 피에 대한 공포가 문제였다. 날숨센서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현재까지 날숨센서로 식별할 수 있는 질병은 당뇨 천식 폐암 신장병 심장병 등 10가지 정도다. 질병 하나당 센서 하나가 대응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센서를 작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3D프린터를 도입했다. 3D프린터를 이용하면 금형작업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형태의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

날숨센서는 질병 진단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다. 신축 아파트에서 나오는 톨루엔,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면 새집증후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지방이 연소될 때도 날숨에 아세톤이 섞여나오는데 이를 측정하면 러닝머신을 뛰는 사람이 충분한 다이어트 효과를 보고 있는지 판단할 수도 있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날숨센서를 이용한 모바일 헬스기기 개발이다. 모바일 헬스케어 산업은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업계가 신성장 동력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특히 최근 건강 관련 웨어러블 기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는 날숨센서의 간편함을 무기로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폰에 USB 방식으로 결합하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구동되는 날숨센서의 특징도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대전=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