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에너지 자립, 전기차로 가능하다
기후변화시대를 맞아 우리 경제가 떠안은 과제는 에너지의 탈(脫)탄소화다. 아마 2050년에는 현재 3%대의 신재생에너지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닌데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산업계 반발이 거세다.

그런데 석유자원을 못 가진 우리의 전통적 염원은 에너지 자립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탈탄소화는 에너지 자립의 기회다. 특정 지역에만 편중된 석유자원과 달리 태양은 모든 나라에 예외 없이 두루 내리비친다. 태양에너지 발전은 이 빛과 열로 생활에너지를 추출한다.

독일의 태양광 발전은 정부 보조 없이도 재래식 발전과 경쟁이 가능한 단계에 진입했다. 기술력이 그만큼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두 배에 이르는 독일 전기요금의 도움도 컸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대량생산으로 패널의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기요금이 너무 낮다. 태양광 발전의 정부 보조는 크지만, 쓰고 남은 발전 전력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수많은 서민 주택들의 참여를 가로막는다. 이처럼 제도가 대형 잠재수요를 억누르는 탓에 패널의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독일의 기술로도 한국에서 태양광 발전의 상업화는 어렵다.

전력을 태양광 발전만으로 조달한다면 밤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 태양광 발전이 안 될 때를 대비하는 후비(後備·back up)발전설비를 따로 갖춰야 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는 다른 발전에 비해 비용이 더 든다. 유럽 국가들은 후비설비를 프랑스와 스웨덴의 원자력 발전에 의존할 수 있지만 전력계통이 고립된 우리는 스스로 갖춰야 한다.

최근 각광받는 전력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는 후비설비의 대안이다. ESS는 전력이 남을 때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뽑아 쓰는 장치다. 전기자동차는 재생에너지 시대의 유망한 후비발전 수단이다. 많은 차량이 분주하게 다니는 시간대에도 전체 차량의 80% 이상은 주차 중이라고 한다. 인프라만 잘 갖추면 주차 중인 전기차 배터리는 집합적으로 거대한 ESS로 기능할 수 있다.

주차 공간마다 전력망에 연결된 충전기를 설치해 주차 중에는 반드시 충전 받도록 하고, 그 지역의 전력이 모자라면 충전 전력을 역송전하도록 한다. 소위 V2G(vehicle-to-grid) 방식이다. 전기차 1000만대는 200기가와트(GW)의 ESS로 기능하는데, 이 용량은 현재 국내 총 발전설비 80GW의 2.5배에 이른다.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00만대로 전기차 시대가 되면 태양광 후비 문제는 거뜬히 해결된다.

그러나 V2G는 현재로서는 하나의 발상일 뿐이다. 태양광 발전의 후비설비를 스스로 갖춰야 하는 우리에게는 재생에너지를 큰 폭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태양광 발전용량을 충분히 확보하면 전력과 자동차 운행 연료를 대체할 수 있으므로 탈탄소화와 에너지 자립을 함께 달성할 수 있다. 충전설비와 스마트그리드 등 전국적 인프라를 갖추면 전기차 수요가 늘게 되고, 대량생산은 그 생산단가를 크게 낮춘다.

이미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배터리 성능 개선과 충전시간 단축을 달성한다면 우리의 전기차 시대는 순식간에 다가올 것이다. 우선 한국전력공사가 전국적 전기차 인프라 설치를 담당하고,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대량생산을 책임지는 구도로 시작해 보자. 남는 전력을 되팔게 하면 모든 가구가 태양광 발전에 참여할 것이므로 태양광 패널 대량생산 길이 열린다. 전기료를 정상화하면 태양광 시대는 더 빨리 온다. 전기차 시대를 빨리 열면 탈탄소화, 에너지 자립은 물론 새 시대의 황금 수익산업까지 우리가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계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만 안주한다면 한국 경제는 결정적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