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소 의료기기업체 대표가 10년간이나 정부 규제와 싸운 얘기는 규제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정열 한신메디칼 사장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낸 탄원서를 모아 ‘고통의 10년’이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냈다. 그야말로 피눈물의 규제일지다. 식약처의 잘못된 규제로 입은 손해만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가 왜 존재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김 사장에게 너무나 높고 단단했다는 규제는 하나같이 어이가 없는 것들이다. 유럽에 수출하는 한신메디칼이 국내에 제품을 출시하려고 독일 최대 시험검사기관 TUV에서 받은 유럽인증과 시험검사 성적서를 제출했지만 식약처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같은 시험을 국내에서 또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뿐이 아니다. 이 회사가 신제품 허가를 받기 위해 개정된 국제규격 기준에 맞춰 시험성적서를 제출했지만 식약처는 관련 제도가 없다며 퇴짜를 놨다고도 한다. 예전 기준의 시험을 다시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식약처는 기술장벽의 필요성 운운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하지만 중복인증 요구는 기업을 희생시켜 국내 시험기관의 일감을 만들어주는 얘기밖에 안 된다. 더구나 시험 등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지 무슨 보호주의 장벽으로 악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상호인정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한다.

행정 규제로 인해 고통받은 회사가 어디 한신메디칼뿐이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은 온갖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IT와 의료 융합이 대세임에도 시대착오적 의료기기법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러니 한국 의료기기산업이 발전할 턱이 없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