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 중에 오텍에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대기업에 가고 싶어했지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회사를 대기업만큼 좋게 만들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으로 만들자’고요”.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특장차와 에어컨 사업을 하는 오텍의 강성희 회장(58)이 수십년 된 단골집을 소개해주겠다며 안내한 곳은 서울 양평동에 있는 ‘또순이네’. 화덕에 주물럭을 구워먹는 고깃집이다. 자리를 잡자마자 “인근에서 꽤 소문난 맛집”이라고 치켜세운다. 저녁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한 가게는 곳곳에 왁자지껄 대화가 오갔다.

“고기를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라고 묻자 강 회장은 “고기맛을 즐기기보다는 이 집에 오면 옛 생각이 나서 자주 찾는다”고 답했다.

그는 “20여년 전 함바집(건설현장 식당)으로 출발한 ‘또순이네’를 초창기부터 찾곤 했다”며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공사장 한쪽에서 값싼 고기를 사다가 주물럭으로 팔고, 남은 고기는 푹푹 썰어 된장찌개에 넣어줬는데, 그 맛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회사가 어려워도 회식 땐 ‘양주’

기아자동차 협력사였던 서울차체 특장차사업부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1997년 기아차가 부도를 내자 우여곡절 끝에 특장차사업부를 분할받아 2000년 오텍을 창업했다. 이후로 직원들 기를 살려주고 싶을 때마다 찾은 곳이 바로 또순이네.

“회사가 어려워도 가끔 직원들에게 고기를 먹여야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까”라며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도 고기를 구워먹는 회식자리를 종종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급 양주 한 병을 꺼냈다. 고기에는 소주가 제격이라고 하지만 회식 때마다 양주를 준비해 직원들에게 한 잔씩 따라줬다고 한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한 잔씩 따라주고 그 잔을 되받아 마시면서 “자네는 비싼 술을 먹을 자격이 있다”며 등을 두드려 줬다는 것이다.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직접 자르면서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들이켜는 모습이 영락없는 두주불사형 애주가다.

○경제신문으로 경영감각 익혀

1955년생인 강 회장은 사회 첫발을 어엿한 대기업이 아닌 대기업 협력사에서 출발했지만 창업의 꿈은 오래전부터 키워왔다. 1980년 10·26 사태 직후 졸업한 탓에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경제는 엉망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혼돈 속에서 목적 없이 사는 듯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우연히 한국경제신문을 읽게 됐다고 한다. “당시 기업 실적이나 재무제표를 자세히 소개하는 신문은 한경뿐이었어요. 마침 자본자유화가 이슈였던 시절이었죠. ‘주식을 사면 돈을 벌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더군요. 반지하방 보증금을 빼서 무조건 주식을 샀어요. 아니나 다를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주가가 엄청나게 뛰더라고요. 솔직히 월급보다 주식으로 더 많이 벌었습니다. 어수선했던 세월이 제게 경제 공부를 시켜준 셈이었죠.”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창업을 하게 된 것도 숙명적이었다.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졌고 기아자동차는 부도가 났다. 협력사인 서울차체도 위기에 몰렸다. 당시 나이 45세. 15년을 몸담아온 직장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창업의 꿈을 키워온 강 회장은 “바로 지금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차체의 차량개조 부문을 분할받아 자기 사업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든 회사가 오텍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 나간 짓이었어요. 당시 차량개조 부문에서 일하던 60명을 데려오기 위해 혹시라도 회사가 망하면 퇴직금을 꼭 주겠다는 각서까지 써 줬으니까요. 약속을 못 지키면 감옥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왜 ‘정신 나간 짓’을 했을까. “‘어차피 나라가 망할 거면 앉아서 기다리느니 뭐든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나라를 보면 위기를 겪은 뒤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하는 사례가 많아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게 있었죠. 사실 한국도 6·25전쟁 이후 그랬고요. 사업을 시작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되더군요. 특장차는 돈이 될 것이란 확신도 있었고요.”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시련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납품하던 대기업이 사라지면서 창업 2년 만에 부도 위기를 맞았다. 월급 줄 돈도 없었다. 절망할 법도 한데 강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사 주면 나중에 반드시 갚겠다”고 장담했다. 몇몇은 회사를 떠났지만, 대다수 직원은 월급을 털어 회사 주식을 샀다.

새옹지마일까. 앰뷸런스 등 오텍이 만드는 국산 특수차의 성능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급속히 성장했다. 2년 뒤인 2002년엔 코스닥시장에도 상장했다. 액면가 500원짜리 자사주를 산 직원 상당수는 주당 3000원에 주식을 처분해 6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나와 붙으려면 목숨을 걸어라”

고기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된장찌개가 나왔다. 강 회장은 “이게 진짜”라고 소개했다. 청양고추와 소고기, 부추,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는 걸쭉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는 “요즘에는 고기보다 된장찌개 먹으려고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특장차 사업 기틀을 닦은 강 회장은 뱃심 좋게 다시 사업 확대에 나섰다. 2011년 1월 미국 캐리어의 한국법인(현 오텍캐리어) 지분 80%를 사들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어컨 회사를 사겠다고 하자 다들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중소기업이 인수한다는 소식에 캐리어 직원들도 불만이 많았다. 미국 금융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아 경제 사정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 회장은 또다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기술은 아무리 봐도 삼성, LG에 못지않은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에 없는 제품도 많았고요. 다만 미국 본사에서 적자를 메워주다 보니 경영을 너무 안이하게 했던 거죠. 노조의 힘도 너무 강했고요. 경영만 제대로 하면 금방 돈을 벌 수 있는 회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절호의 기회라고 봤어요.”

강 회장은 인수를 마무리한 뒤 전 직원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인수해서 기분 나쁜 것 안다. 하지만 지금부턴 내가 회사의 주인인 만큼 내 뜻을 따라야 한다”고 선언했다.

순간 직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 회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대신 나는 이 회사에 목숨을 걸겠다.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겠다. 여러분은 목숨을 거는가. 나와 붙으려면 목숨을 걸고 붙어라. 아니면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반드시 좋은 직장으로 만들겠다.”

그렇게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운 강 회장은 1년도 안돼 약속을 지켰다. 2010년 15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회사를 인수 첫해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이후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노조가 거세게 저항하는 건 자신의 이익을 빼앗길까 봐 두렵다는 뜻입니다. 회사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노조의 이익이 보장된다는 제 설득을 직원들이 잘 받아준 거죠.”

왜 목숨까지 걸며 사업에 매달리는 것일까. 강 회장은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며 “다른 중소기업 사장들도 목숨 건다는 마음으로 사업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직원 중에 오텍에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대기업에 가고 싶어했지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회사를 대기업만큼 좋게 만들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으로 만들자’고요.”

○“같이 잘되자”, 보치아계의 ‘대부’

강 회장은 사업 규모는 대기업에 비할 바가 안 되지만 사회에 반드시 공헌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한다. 장애인을 위한 특장차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싹튼 신념이다. 오텍이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을 후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름도 생소한 보치아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공을 굴려 목표점에 가까이 가게 하는, 컬링과 비슷한 스포츠다. 인지도가 낮아 회사 마케팅에 별반 도움은 안 되지만 강 회장은 보치아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장애인용 특장차를 만들면서 인연을 맺은 뒤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해서다. 오는 10월 개최될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도 후원할 예정이다. 그는 “남을 돕지 않을 거면 돈 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순이네도 번 돈의 일부를 불우 청소년들의 학비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더 좋아하는 것이라고 속삭였다.

■ 해외출장 때 꼭 챙기는 ‘캐리어’ 찍힌 명함

강성희 오텍 회장은 해외에 나갈 때 오텍캐리어 대표이사 회장 명함을 꼭 갖고 다닌다. 에어컨과 공조시장의 글로벌 강자인 캐리어 브랜드 덕을 톡톡히 볼 수 있어서다. 베트남 브라질 터키 인도 등의 특장차 시장을 뚫는데도 캐리어 명함이 한몫했다. 강 회장은 “미국 캐리어와 사업 파트너라는 점이 해외에서 통한다”며 “캐리어 인수 뒤 해외 사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성희 "왜 죽을 각오로 사업하냐고요?…그래야 승부가 나죠"
■ 강성희 회장의 단골집 ‘또순이네’
주물럭 고기·부추 듬뿍 넣은 된장찌개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성희 "왜 죽을 각오로 사업하냐고요?…그래야 승부가 나죠"
메뉴는 토시살, 등심, 된장찌개 셋뿐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된장찌개다. 점심 때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또순이네가 생각나더라도 시간이 오전 11시30분을 넘었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 길게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 때도 양평동 인근은 물론 여의도에서 넘어온 직장인들로 항상 붐빈다. 토시살은 호주산으로 1인분(200g) 2만7000원, 등심은 국내산 육우로 1인분(200g)에 2만5000원이다. 최고 등급 한우는 아니지만 양념이 적절하게 배어 있어 고소하게 잘 씹힌다. 숯으로 구워 향도 좋다.

된장찌개(1인분 6000원)는 고기, 부추 등을 뚝배기에 가득 넣어 숯불판에 올려준다. 걸쭉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긴다. 포장은 1만원인데,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한 양을 준다.

공휴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양평동에서만 20년 넘게 영업했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과 당산역 중간쯤에 있다. 지하철에서 도보로 5~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주소는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4가 77의 2. (02)2672-2255

■ 강성희 회장 약력

▷1955년 서울 출생 ▷1981년 한양대 사학과 졸업 ▷1982년 서울차체 입사 ▷2000년 오텍 창업 ▷2007년 한국터치스크린 인수 ▷2011년 캐리어에어컨 인수 ▷2012년 캐리어냉장 인수

남윤선/박영태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