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닭튀김 수렴 공식'부터 깨라
“학부모 여러분, 얼른 동네 치킨집 사장님 이력부터 조사해 과외를 맡기세요.” “지금 프로그래머인데 은퇴하면 학원 강사나 해볼까.” 정부가 소프트웨어(SW) 조기교육을 발표하자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반응들이다.

SW업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공식 하나가 있다. ‘코더→프로그래머→아키텍트→연구소장→닭튀김 사장’이라는, 이른바 ‘닭튀김 수렴 공식’이 그것이다. 그나마 이건 풀코스를 다 거친 경우다. 더 확장하면, 무엇을 전공했건 일단 이 바닥에 뛰어들면 결국 그런 경로를 걷게 된다는 자조 섞인 한탄인지도 모르겠다.

SW 조기교육 논란

정부 발표에 따르면 중학교는 내년 입학생부터 의무적으로 SW교육을 받게 된다. 또 초등학교는 2017년부터 SW가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고, 고등학교는 2018년부터 SW가 일반 선택과목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취지 자체는 화려하고 지당하다.

하지만 당장 조기교육이 어떻게 흘러갈지 훤히 내다보인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가르칠 선생은 있나” “진도 빼고 연습문제 풀겠지” “사설학원만 양산한다, 끝” “코딩대회 수상 스펙 추가요” 등등. 어떤 교육도 대학 입시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예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SW개발자도 있다. ‘서울버스’ 앱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유주완 씨는 “주먹구구식으로 관심도 없는 학생에게 SW를 가르치면 공부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SW에 대한 ‘흥미’가 앞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이민석 NHN NEXT 학장도 “제발 그냥 ‘재미’로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한다. 어릴 때부터 코딩을 할 줄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흥미’나 ‘재미’는 관료들이 좋아하는 수치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몇 명을, 몇 시간 교육했는지만 중요할 뿐이다. 이래저래 일선 학교들만 할당된 몫을 채우느라 바쁘게 생겼다.

SW 비전이 먼저다

정부는 2017년까지 SW 개발인력이 8만명 이상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솔깃해할 학생과 학부모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전망이 자칫 과잉공급으로 귀결될 가능성까지 다 계산할 만큼 영민한 이들이다. 정부가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을 ‘롤 모델’로 내세우는 것도 그렇다. 한 세기에 몇 명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위인이 되겠다고 나설 학생, 또 이를 지원할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되겠나. 이들은 주변의 SW개발자가 어떻게 대우받고, 그들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눈여겨본다.

비전이 있다면 정 부가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우수 인재들이 몰려간다. 비전은 시장의 파이와 비례한다. SW 제값받기를 강조하는 정부부터 제값을 쳐주는지 돌아보라. 불법복제가 문제라지만 공공기관은 얼마나 떳떳한가. 각 부처·지자체가 경쟁이나 하듯 공짜 SW로 민간 SW기업의 설 땅을 빼앗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그것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이러니 더 이상 ‘닭튀김 수렴 공식’은 유효하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다.

마이크로 블로깅 사이트 ‘텀블러’의 창업자 데이비드 카프는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가 그렇게 좋으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엄마의 조언이 창업의 계기였다”고. 비전이 있다면 이런 선택도 일어난다.

안현실 경영과학博 논설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