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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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새로운 시장의 모색

LED·의료 기기·자동차용 전지…
관료주의에 물든 삼성 사람들의 가슴에서
꿈과 개척정신을 불러낼 만한 변경들은 못 되었다


[사회평론가 복거일 기고문] 삼성의 신수종사업엔 '와우!' 할 만한 스토리가 없다
물론 삼성은 줄곧 새로운 시장들을 찾았다. “10년 뒤에 먹고살 일을 걱정”해온 이건희 회장은 우리 사회에선 가장 멀리 내다보고 대비해온 기업가다. 그런 노력은 ‘신수종사업’이라 불리는 사업 계획을 낳았다. 2010년에 발표된 이 계획은 5년에서 10년 뒤에 수익을 낼 사업들인 발광다이오드(LED), 자동차용 전지, 태양 전지, 의료 기기, 그리고 바이오시밀러를 포함했는데, 뒤에 착용형 기기와 사물인터넷(IoT)이 추가되었다.

사업들의 성과는 당연히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태양전지 사업은 포기되었다. LED, 착용형 기기, 사물인터넷은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로선 기술 혁신 과정에서 당연히 탐색해야 할 사업들이므로 신수종사업이라 할 것도 없고, 그 기술의 진화와 쇠멸도 정상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용 전지는 교통 수단에 점점 널리 쓰일 터이므로 유망한 사업이다. 의료 기기는 특수화된 분야지만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과 연관이 있는 한도에선 나름으로 타당성이 있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타당성이 작다. 제약 산업은 이미 지식과 명성을 확보하고 국제적 영업망을 구축한 범지구적 제약 기업들과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틈새시장을 확보한 모험기업들로 이루어졌다. 그런 산업에서 특허권이 소멸된 약품들을 대량 생산하겠다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시장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시설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이문이 너무 박해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의료보험의 확대로 정부가 점점 중요한 고객이 되어가는 추세라 이문은 점점 박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삼성이 추종자에서 개척자로 변신한 지금, 남의 지적 산물을 거대한 자본으로 대량 생산해서 수익을 얻겠다는 발상은 퇴행적이고 삼성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안 된다.

정작 아쉬운 것은 삼성의 신사업들이 서로 연관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이 세상을 이야기의 형태로 파악한다. 모든 지식은, 일상적 정보부터 물리법칙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으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도록 하지 않는 사물들은 단순한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 진출하겠다는 사업들을 내놓으면 그들 사이의 연관성이 보는 이의 마음에 이야기 형태로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한다.

아마존이 인터넷으로 책을 파는 기업에서 전자책 킨들(Kindle)을 보급하는 것을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을 파는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멋진 이야기라서 모두 탄성을 낸다. 바로 그 이야기 때문에 변변치 못한 수익을 내는 아마존을 시장이 높이 평가한다. 구글이 인터넷을 통해 지식의 지도를 제공하는 것에서 실제로 지구의 모든 길의 영상을 제공하는 것을 거쳐 그 정보에 의지해 움직이는 ‘운전자 없는 차(driverless car)’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더욱 멋진 이야기다. 구글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구글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애플은 아예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이야기를 한 셈이다.

보는 이의 마음에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른다는 것은 사업 확장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아쉽게도 신수종사업엔 그런 이야기가 없다. 거의 모든 산업에 진출한 재벌이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업들 사이의 연관이 너무 적다. 그래서 추진력이 약하고 공력효과(synergy)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한번 좌절하면 그 좌절을 경험으로 삼아 다시 일어설 기력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우리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까지도 궁극적으로 햇빛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태양전지 사업이 궁극적 기술을 찾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궁극적 기술에서 너무 쉽게 물러난 데서 이런 약점을 엿볼 수 있다.

이미 실용적임이 증명되어 5년 내지 10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술들을 골랐으므로, 원래 신수종사업은 관료주의에 물든 삼성 사람들의 가슴에서 꿈과 개척 정신을 불러낼 만한 변경들은 못 되었다. 삼성은 이미 빠른 추종자에서 개척자의 자리로 나섰는데, 아직 나아갈 변경은 찾지 못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을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가?

(7) 실수를 잘 하는 길

새 사업 개척 과정서 실수는 필연적
중요한 건 그 실수가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 경험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뛰어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범지구적 기업 삼성을 이끌게 된 이재용 부회장의 처지는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다. 원래 수성은 창업만큼 어렵다고 했지만, 지금 이 부회장이 진 책임과 거기 따르는 심적 부담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넘을 터이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업들에 훨씬 비우호적인 사회로 바뀌었다. 전자산업만 하더라도, 반도체의 가능성을 먼저 인식하고 기업들에게 전자산업에 나서도록 격려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제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도 않고, 설령 나오더라도 기업을 그렇게 보살필 힘이 없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이 부회장은 먼 지평을 지닌 변경을 삼성 안팎에 뚜렷이 제시하고 삼성 사람들을 그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험난할 터이고, 실수와 좌절들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이다. 이 부회장이 맞은 어려움은 그런 실수와 좌절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나 아직 세계적 기업이 못 되었던 삼성을 이끈 이건희 회장은 더러 실수를 해도 큰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처지가 다르다. 제국을 스스로 세운 사람이 누리는 존경심을 제국을 물려받은 사람은 누리지 못한다. 이 부회장이 저지르는 첫 실수나 좌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일 반응은 이 부회장 자신에겐 악몽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부회장이 어떤 길을 고르든, 실수와 좌절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실수가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일 뿐 아니라 소중한 경험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애플의 경험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애플은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인 ‘뉴턴(Newton)’을 개발했다. PDA가 중요한 제품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컴퓨터는 거대한 초기 컴퓨터에서 메인프레임(Mainframe), 미니컴퓨터(Minicomputer), PC, 랩톱(laptop), 노트북(notebook)으로 차츰 소형화되고 점점 개인의 일상적 정보처리 수단으로 진화했다. 그런 추세의 마지막은 PDA일 터였다. 그러나 뉴턴은 실패했다.

기술적 문제들도 있었지만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게임기, 휴대폰 및 사진기가 빠르게 똑똑해졌고 마침내 휴대폰이 휴대용 정보처리 장치가 되었다. 애플은 너무 일찍 나와 실패한 뉴턴을 휴대폰에 얹어 아이폰(iPhone)을 만들어서,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열었다. 만일 애플이 휴대폰의 진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뉴턴의 실패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다면, 스마트폰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라기보다 필연적인 실패를 잘 하는 것이다. 멀지만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거기로 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실패를 하고 그 실패가 목표에 이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설명하는 것이다. 시장은 어리석지 않다. 그런 태도는 실패가 두려워서 몸을 사리고, 하던 일들만 하는 태도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8) 우리 사회가 막은 변경들

금융·농업 등 틈새시장이 있지만 삼성이 변경으로 삼기엔 모두 어렵다
현실적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미성숙 분야에서 변경을 찾아야 한다


삼성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업이다. 그래서 계열사들도 거의 다 자기 분야에서 국내적으로는 가장 앞섰다. 자연히 삼성에 열린 변경도 다양하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금융업으로의 진출이다. 지금 우리 금융업은 지나친 규제와 전투적 노동조합 때문에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된다.

삼성이 진출해서 국제적 금융기업을 세운다면 삼성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삼성은 뛰어난 보험회사, 증권회사, 그리고 경제연구소를 거느렸으므로 진출 과정도 수월할 것이다. GE처럼 제조기업이 단숨에 금융업으로 진출해 크게 성공한 사례도 있으니 위험도 적다. 그러나 삼성의 금융업 진출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형 은행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로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농업도 유망하다. 생명공학과 전자 기술의 발전은 ‘원시적 농업 기계’인 농토에서 ‘현대적 농업 기계’인 공장형 농장으로의 진화를 촉진한다. 삼성과 같은 기업이 우리 농업을 위해서 할 일은 많다. 농업에서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종묘회사들이 극심한 불황 속에서 외국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사실도 삼성처럼 뛰어난 기업의 참여를 호소한다. 그러나 동부그룹의 혁신적인 토마토 농사가 겪은 처참한 좌절이 가리키는 것처럼 막대한 농업보조금은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길렀고, 지금은 어느 정권도 농업시장의 자유화를 시도할 수 없다.

다른 분야에서도 유망한 틈새시장들이 있다. 그러나 삼성이 변경으로 삼기엔 모두 정치적 어려움이 따른다. 현실적으로 삼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원숙하지 않은 분야들에서 변경을 찾아야 한다.

(9) 인간의 노후화

무인항공기·무인자동차·무인화물선…
사람이 배제된 기계 기술은 새로 참여하는 생산자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변경을 찾는 일은 상당히 먼 미래를 조망하는 일이다. 자연히, 인류사회가 보이는 장기적 추세들을 살피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런 추세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노후화(Obsolescence of Man)’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계의 작동 환로(loop)에서 사람은 가장 취약한 고리다.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기계들과 사람 사이의 인터페이스는 복잡해서 사고의 가능성을 높이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사람을 환로에서 배제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기계들은 스스로 작동하는 존재로 빠르게 진화했다. 근년에 크게 발전한 무인항공기(drone)는 전형적이다.

앞으로 사람에 의해 조종되지 않는 기계들은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곧 나올 것이다. 요즈음엔 무인화물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런 배의 선장은 선교에서 선원들을 지휘하는 대신 육지의 사무실에서 혼자 배를 조종할 것이다. 그런 배들은 물론 ‘유령선(ghost ships)’이라 불린다.

기계가 대치하는 것은 실은 사람의 근육과 일상적 판단만이 아니다. 사람의 중심적 특질이라 할 수 있는 지성까지 기계가 점점 많이 대신한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라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사람의 지능을 보완한다. 전문가 체계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고하는 규칙과 자료를 정리해 스스로 판단할 뿐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능력까지 갖춰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런 추세에서 상징적 사건은 한 세대 전에 나왔다. 위상수학이 초기에 이룬 성과들 가운데 하나는 ‘4색 추측(four color conjecture)’이었다. 맞닿은 지역이 같은 색이 아니도록 지도를 칠하는 데는 네 가지 색깔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 추측의 증명은 보기보다 힘들어서 1976년에야 이 문제가 풀렸고, ‘4색 추측’은 마침내 ‘4색 정리 (four color theorem)’가 되었다. 그러나 증명의 과정이 너무 방대해서 사람이 그것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하며 컴퓨터 프로그램만이 따라갈 수 있다. 즉 컴퓨터는 수학적 증명의 본질적 부분이 되었다.

이처럼 점점 많은 분야에서 사람은 쓸모가 없어진다. 1960년대에 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는 이런 현상을 진단하고 ‘인간의 노후화’라 불렀다.

기계의 작동 환로에서 사람이 배제된 기술은 당연히 판을 흔드는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될 수밖에 없다. 기계의 작동에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운전자, 선장, 조종사 같은 사람이 빠지면 기계 전체가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자동차에선 계기반이 사라지고 다른 차들과 중앙통제소와의 무선 교신이 중요해질 것이다. 전투기는 조종사를 태우고 보호하기 위한 설비들이 없어지고 조종사의 육체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급속히 기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전차는 승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이 줄어들고, 쉬지 않고 여러 날 기동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생산자들에겐 큰 문제가 되고, 새로 참여하는 생산자들에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내일 3부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