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유보금 과세, 국가 정체성 훼손하는 강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작년 11월20일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에 명시된 바, 배당하지 않은 이익금이 개인 소득세 회피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내유보금을 배당하면 세금 증가 효과는 물론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로 소비가 늘어 내수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주된 목적은 복지비용을 뒷받침할 증세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 활동의 결과 발생한 당기이익금 중에서 세금과 배당금 등으로 사외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회사 내에 축적된 금액을 말한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 돈이 회사 내에서 그냥 잠자고 있다는 생각인데, 이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대부분은 생산 시설 등에 투자돼 있으며, 현금성 자산은 유보금 총액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미 법인세를 납부한 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이 중 이미 투자된 시설을 포함한 주주의 재산에 대한 이중과세다. 또한 적정 유보금 규모와 이의 구성은 전적으로 자본가·기업가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유보금 과세는 자유 사회와는 양립할 수 없는 국가의 강제이며 정의롭지 못하다. 법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내유보금 과세로 배당 성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다고 하지만, 배당은 주주가 오늘 가져가는 몫이고 유보금은 나중에 가져가는 몫이다. 주주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주식을 취득하므로 이 또한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이 같은 비판을 넘어 한층 더 우려되는 사항은 복지비용 마련을 위해 국가가 개인의 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의 복지활동이 단순한 서비스 활동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의 확보 과정에서 강제를 수반하므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사회주의와는 달리 특정 체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복지활동에는 자유 사회에 바람직하면서도 가능한 것과 자유 사회와 양립할 수 없거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금, 어느 누구도 사회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념은 바로 복지국가라는 이름 아래 환생(還生)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은 그런 사회주의자들의 음습한 노림수를 사려 깊지 못한 정치권이 수용하려는 태도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활보조 차원을 넘어 나이나 계층 등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전방위적 증세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유보금 과세가 현실화되면 국방과 치안, 그리고 그 외의 비강제적 영역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국가 재정을 조달하는 선을 넘어섬으로써 조세의 성격은 이제 정도(degree)의 문제에서 종류(kind)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즉 국가가 국민소득의 대부분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짐으로써 국가는 자유 사회에서 강제 사회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복지공약 실천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런 정책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훌륭한 목적을 위한 열정과 선의(善意)를 가진 정부 관료나 전문가들이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규모 사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고 나라 경제는 물론 개인의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이는 곧 정부의 역할은 목적보다는 이의 달성을 위한 수단을 기준으로 제한돼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런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일수록 선의로 포장된 잘못된 정책을 열정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은 과장이 아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경제팀은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을 접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