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낭독하고 낭송하라
지금 봐도 감동적이다. 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이 달 궤도를 돌면서 성경 ‘창세기’를 낭독했다. 이들이 1장1절에서 10절까지를 나누어 낭독하는 2분여 동안 TV 시청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날 지구 곳곳에서도 낭독 행사가 펼쳐졌다. 뉴욕과 파리, 암스테르담 등에서 작가들은 소설을 낭독하고 시인들은 시를 낭송했다. 온 우주가 함께한 소리의 향연이었다. 낭독의 향기는 눈에서 입으로, 혀에서 입술로, 목젖에서 성대로 이어진다. 그 부드럽고 둥근 음향이 서로를 보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연인이 된다.

문학다방 봄봄의 낭만 낭독회

프랑스 시인 자크 프뢰베르의 시를 흉내 내자면 요즘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서울, 신촌의 기차역 옆 문학다방 봄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거의 날마다 낭독회가 열린다. 월요일엔 인문학, 화·수요일엔 소설, 목요일엔 로맹 가리 등 외국 작가 작품, 금요일엔 북콘서트…. 열 권짜리 대하소설 《객주》도 함께 읽는다.

한 달에 한 번 가수 신재창과 함께하는 봄봄 문학콘서트도 특별하다. 엊그제는 나태주 시인을 초청해 ‘풀꽃’ ‘참 좋은 날’ 등의 시에 곡을 붙여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공광규 천양희 시인 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주인장인 김보경 씨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트렌드연구회 시삽 때부터 낭독에 푹 빠진 ‘입문학자’다. ‘북 코러스’란 이름으로 함께 모여 책을 낭독한 지 5년째. 지난해 말 이곳에 전용 카페를 연 뒤로 더 바빠졌다. 얼마 전 출간한 《낭독은 입문학이다》(현자의마을 펴냄)도 인기다. 그는 “가랑비에 옷 젖듯 책과 사람에게 서로 젖어드는 게 낭독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낭독(郎讀)과 낭송(郎誦)은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음독(音讀)의 하나다. 낭독은 의미와 감정을 함께 녹여내므로 산문이나 연극 대사 등에 잘 어울린다. 낭송은 이보다 더 음악적이어서 시나 짧은 수필 등에 리듬을 실어 암송할 때 좋다. 곡조를 조금 더 타면 낭창(朗唱)이 된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늘고 긴 막대기나 줄이 탄력 있게 흔들리는 우리말 소리와 닮았는데 낭창낭창한 허리, 낭창낭창한 선율, 낭창낭창한 소리처럼 어감도 정겹다.

낭송하면 기억·집중력도 쑥

낭독과 낭송이 좋은 이유는 많다. 소리 내어 읽으므로 흥이 나고 즐거워진다. 리듬 따라 머리와 몸을 가볍게 흔드니까 신체 감각이 활성화된다. 눈과 혀, 입술, 성대, 고막까지 자극하니 뇌가 저절로 살아난다. 가장 큰 장점은 시·청각을 결합한 공감각 덕분에 학습효과가 커진다는 것이다. 낭송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전두엽 기능 평가 결과 낭독 후 기억력이 20% 향상됐다. 아이들에게 문장을 읽어주면 상상력과 자신감, 표현력, 감성이 커진다. 성인도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진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던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을 소리 내 읽었다. 다산 정약용도 ‘이 세상에서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꼬/ 눈 쌓인 깊은 산속 글 읽는 소리로세’라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소리보다 문자, 대화보다 메시지의 세태로 변해버렸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심신의 공명을 일으켜야 한다. 마음과 마음, 손과 손을 마주잡고 영혼의 두레밥상에 둘러 앉아 낭독, 낭송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오늘 당장 해 보자. 문학다방 구경도 가 보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