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車, 조직의 위기 살필 때다
자동차를 살 땐 많은 것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없는 살림살이에 큰돈을 들여야 하는 일이어서다. 디자인, 가격, 연비, 편의성, 용도 등이 주요 고려 대상이다. 안전성은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리는 것 같다. 요새 나오는 자동차는 대체로 안전할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일 게다. 자동차 안전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자동차회사들도 생명과 직결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1000만대가 넘는 자동차 리콜 사태로 떠들썩했다. 문제는 에어백이었다. 에어백은 운전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심 안전장치다. 달리는 자동차가 정면 충돌하는 사고에도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마지막 방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8세 여성 운전자가 이 에어백의 가스발생제 용기 파열로 인해 튀어나온 금속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에어백이 운전자 안전의 방패가 아니라 죽음의 창이 돼버린 것이다. 이 사고로 도요타, 혼다, 닛산, 마쓰다 등이 줄줄이 리콜 조치를 해야 했고 포드, 크라이슬러, BMW도 리콜 계획을 발표하면서 천문학적인 규모로 리콜이 확대됐다.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에어백같이 몇 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는 부품으로 인한 피해는 그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자동차회사는 오토리브, 타카타, TRW라는 3개 업체에서 에어백을 공급받는다. 문제가 있는 에어백을 공급받은 자동차회사는 대규모 리콜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미국에서 발생한 에어백 사고는 타카타 제품으로, 이를 구매한 자동차회사들은 앉은자리에서 폭탄을 맞은 셈이다. 다행히 한국 자동차업체는 오토리브 에어백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규모 리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리콜 사태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동차회사에 공통적으로 만연돼 있는 고질적인 조직문화다. 발생된 문제를 감추려고 하는 ‘은폐 문화’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책임전가 문화’가 그것이다. 물론 어떤 회사나 이런 부정적인 조직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잘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네 탓인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는 잘한 것만 보이려고 하고, 잘못된 것은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게 보통이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소위 ‘물타기’가 진행된다. 자동차회사에는 이런 은폐·책임전가의 조직 문화가 유독 심하다. 자동차라는 제품의 구조가 워낙 복잡하고, 부품이 상호 의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품질문제가 발생해도 정확히 원인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감추거나 서로 떠넘기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올초 결함 은폐문제로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가 의회 청문회장에 서고, 도요타가 12억달러의 벌금을 내게 된 것도 자동차회사의 이런 조직문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모듈화에 따른 분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동차회사의 경영관리는 마냥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자동차는 비교적 탄탄대로를 질주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품질평가기관인 제이디 파워가 시행한 초기 품질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한 일반 브랜드 차종의 평가라고는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를 비롯해 세계의 강자들을 제쳤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다.

그러나 자동차회사의 질주는 항상 대형사고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즘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쌍끌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중국 저가폰 공세 등에 주춤하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의 국가 경제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동차회사는 특히 잘 달릴 때 조심해야 한다.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교훈 삼아 한국 자동차회사들도 안전시스템 및 조직문화를 포괄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