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안 되니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죠.” “굳이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결혼이) 사회 진출 확대나 경력 관리에 큰 도움이 안되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20대 여자대학생에게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당장 졸업 후의 취업부터가 막막해 결혼을 꿈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계륵’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안 하면 왠지 후회할 것 같고, 그렇다고 하자니 자신이 꿈꾸는 인생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화여대 4학년 L씨(25)는 “제 또래가 생각하는 대학 졸업 후의 단계는 취업이지 결혼이 아니다”며 “일단 취업을 해야 직장 내 경력 개발과 결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졸업-취업-결혼’의 순서는 ‘불변’이라는 것이다. 마케팅 분야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각종 입사시험에 원서를 내고 있지만 1단계인 서류전형에서부터 낙방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내 앞길이 불투명한데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사과정을 수료한 뒤에도 세 학기나 졸업을 연기하다 지난해 2월 미취업 상태로 숙명여대를 졸업한 K씨(27). 최근 1년여간 사귄 서른 살의 남자친구와 결별한 뒤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서로에게서 미래가 안 보인다”며 이별을 결정한 것. K씨는 “20대 초반엔 ‘27세쯤이면 직업도,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의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속박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확산되고 있다. 홍익대 4학년에 재학 중인 P씨(26)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연애만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서로 의지하며 살 동반자는 필요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긴 싫다는 것. P씨는 “나 자신을 제대로 챙기기도 어려운데 나중에 ‘시월드’(시댁을 가리키는 신조어)까지 어떻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P씨는 “결혼은 상대를 으레 그곳에 있는 ‘당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고도 우려했다. 연애 관계에는 비교적 긴장감이 있지만 결혼 관계는 느슨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남자대학생들의 결혼관도 여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조건 취업이 우선이다. 남성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여전한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순천향대 4학년 J씨(25)는 한 살 어린 여자친구와 ‘죽고 못 사는’ 사이라고 한다. 경제적 여건만 갖춰지면 당장 결혼하고 싶단다. 하지만 여전히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종종 “오빠랑 결혼하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라고 애교를 부리며 물어오면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또래에 비해 대학에 오래 재학 중인 홍익대 4학년 K씨(28)도 비슷한 생각이다. 전문 자격증 취득을 위해 졸업을 미루고 있는 그는 “결혼해서 안착하고 싶지만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결혼 적령기 남녀의 ‘상황 불일치’도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20대 후반 남성은 한창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여자친구 연령대인 20대 중후반 여성은 이미 직장인 중에 결혼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한다는 것. 지난해 김씨가 학원강사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도 그랬다. “그 친구는 결혼 얘기를 꺼내는데, 저는 응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