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국민행복 관점의 환율?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환율을 국민행복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13일 부총리로 내정된 직후다. 그는 “환율정책이 국민행복과 동떨어지지 않았나 싶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원화가치가 오르면(환율이 떨어지면) 구매력이 좋아져 소득이 오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지난 20일 1020원60전)은 최근 3개월 새 50원 넘게 떨어졌다. 올 하반기 1000원 선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최 후보자의 발언이 나왔다. ‘환율 추가하락을 용인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시장에서 나온다.

환율하락 버틸 수 있나

지금의 환율정책은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생긴 것이다. 그 이전에는 저(低)환율 정책을 썼다. 6·25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하게 된 유엔군이 한국에서 쓰는 돈이 외화의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유엔군에 돈을 적게 주려고 구매력가치의 절반 수준으로 ‘공정환율’을 정했다.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10~15% 정도를 이런 인위적인 저환율 정책으로 벌어들였다.

박정희 정부는 1964년 5월 달러당 130원이던 환율을 250원으로 2배가량 올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출 중시 환율정책이 자리 잡았다.

최 후보자의 최근 발언은 이런 수출 중시 환율정책이 ‘더 이상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지금껏 한국은 수출해서 일자리를 만드니까 국민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고환율을 강조했는데, 이제 경제성장을 하는데도 국민에게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무역수지가 800억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될 만큼 수출이 잘되는 것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이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이 급증하는 삼성전자의 수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무역금융 시장을 외국계 은행에 내주고 있다’는 한국경제신문 보도(6월17일자 A1, 3면)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0년 95조원이던 삼성전자 수출은 지난해 141조원으로 50%가량 늘었다. 시중은행들의 ‘동일인 여신한도(은행 자기자본의 25%)’를 꽉 채워버린 것이다.

네덜란드병 경계해야

반면 중소기업들을 포함한 대부분 국내 기업들은 임금 상승과 생산성 정체로 고전하고 있다. 발끝을 세워 동동거리며 수면 위로 머리를 간신히 내민 기업들이 많다. 이런 기업들은 환율하락 쓰나미에 휩쓸려 간다.

이런 사례는 1960년대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북해유전 발견으로 네덜란드 수출이 급증하자 환율이 급락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 제조업이 무너졌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특정 부문의 수출 급증으로 인한 환율하락(화폐가치 상승)을 방치해 다른 부문이 죽는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네덜란드병(病)’이라 부른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는 중동 국가나 중국이 국부펀드를 만들어 외화를 해외로 빼내는 것은 네덜란드병의 원인인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조치다.

한국이 소비보다는 절약(저축)을, 수입보다는 수출을, 복지보다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온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 위함이었다. 환율을 떨어뜨려 당장의 국민행복을 늘리는 것은 ‘미래의 국민행복’을 희생시켜 얻는 순간의 달콤함일 뿐이다.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