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A건설사는 최근 케냐에서 발전소 건설 공사를 하다가 미국 B설비회사의 납품 장비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A사는 수천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사건을 가져간 곳은 법원이 아니라 민간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이었다. 법무법인 세종이 A사를 대리해 이곳에서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Law&Biz] "국제중재 돈 된다"…앞다퉈 팀 만드는 로펌들
국내 대형 C건설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로 공사를 하다가 발주처인 미국 건설회사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비용도 수백억원 더 늘었지만 발주처가 이를 추가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C사는 공사가 끝난 뒤 미국중재협회 국제분쟁해결센터(AAA ICDR)에 분쟁 해결을 의뢰했다. C사는 사건을 법무법인 율촌에 맡겼고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한 전문가는 “중견급 이상 기업은 해외거래를 하며 분쟁이 생겼을 때 90% 이상이 국제중재로 해결한다”며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한 데 반해 국제중재는 신속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절차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펌들이 국제중재 분야에서 금맥을 캐고 있다. 한국 기업이 당사자인 국제중재 사건 수(세계 5대 중재기구 및 대한상사중재원 합계)는 2010년 96건에서 2013년 147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로펌들은 앞다퉈 국제중재팀을 신설하고 있다. 국내 10대 로펌 중에서 국제중재 전담팀이 있는 로펌은 6곳이며 이 가운데 절반은 최근 6년 사이에 만들었다. 팀 인력은 보통 20명 안팎이며 김앤장은 약 50명에 이른다. 법무법인 바른은 전담팀은 아니지만 지난해 말부터 자문팀 안에서 태스크포스팀(TFT) 형식으로 국제중재팀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중재는 민간 중재센터에서 중재위원(관련 분야 전문가)의 판정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절차를 말한다. 변호사만 사건을 대리할 수 있는 재판과 달리 원칙적으로 자격 제한이 없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변호사가 담당한다. 분쟁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해외 거래의 특성상 국내 재판보다 큰 경우가 많아 수임료도 적잖게 받을 수 있다.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국내 법률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것을 생각하면 로펌 입장에서 해외 시장 개척이 필요한데 국제중재가 유망한 분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국제중재를 담당하는 국내 변호사들의 수준도 국제 법률시장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주요 국제중재 기구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도 많다.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지난달 세계 최대 국제중재기구인 ICC의 부원장에 선임됐다. 윤병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ICC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임 변호사는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상임위원을, 박은영 김앤장 변호사는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당사자인 국제중재 사건도 국내 로펌이 담당하고 있다. 최근 방위사업청은 이탈리아 군수회사(Simmel Difesa S.P.A.)에서 납품받은 폭탄에 결함이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국제중재를 신청했다. 양 당사자가 등 돌리지 않고 계속 거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중재 절차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이견을 좁혔고 결국 이탈리아 회사가 일부 손해배상하는 쪽으로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법무법인 세종이 방위사업청을 대리했다.

마이클 리 AAA ICDR 싱가포르지사장은 “국제중재는 최근 크게 늘고 있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게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희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기업의 해외 거래가 늘어나면 국제중재도 필연적으로 많아지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대응력이 낮은 곳이 많은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