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실경산수로 들여다본 조선후기 사회
시각 이미지만큼 한 시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드물다. 그 속에는 문헌자료가 얘기해주지 않은 시대와 그 시대를 산 사람의 진솔한 삶과 정서가 녹아있다. 미술사학자 박정애씨의 신간 ‘조선시대 평안도 함경도 실경산수화’는 조선시대 관서(關西) 및 관북(關北)지방의 실경을 묘사한 산수화를 통해 당대 사회와 지역문화의 분석을 시도한다.

그간 남한 지역의 실경산수화는 많이 연구됐지만 북한 지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더 이상 우리의 활동 무대가 아닌데다 그곳을 직접 답사할 수 없다는 점도 큰 장애물이다. 저자는 그런 난점을 문헌 자료의 발굴,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시각 자료의 열람과 옛 사진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극복했다.

저자는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은 오랫동안 변방으로 간주돼 사대부 계층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다가 이곳이 적극적인 실경산수화의 묘사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7세기 이후 유람의 풍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부터라고 한다. 평안도의 경우 점차 확대되는 중국과의 교류 통로라는 점과 이 지역의 경제적 발전이 관심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이에 비해 관북 지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18세기 말에 들어와서야 활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관서지방과 달리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현지에 부임한 지방관들이 대부분이었고 실경산수화에 대한 주문도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 관서 산수화는 도성의 일급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려진 데 비해 관북 산수화는 지역 화사(畵師)나 군관화사가 그려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졌는 점을 현존 작품과 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 관서와 관북지방의 실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명승 유람풍조의 확산이라는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결합된 결과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미지를 통해 조선시대의 잊힌 역사와 사회를 복원하는 초석이 되기에 충분한 연구서다. 200 점이 넘는 컬러 및 흑백 사진이 학술서의 딱딱함을 보완해준다. 조선시대 함경도 및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이 부록으로 실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