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빛나는 자산운용사] 증시침체에 선제 대응…자산운용사들의 명품 실적
증시 침체로 금융투자업계가 위축됐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모습이다. 선제적인 대응으로 침체장 속에서도 위기를 정면 돌파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처럼 직접 투자 대신 공모나 사모펀드를 통해 주식에 간접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어 금융투자업계가 운용사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이다.

위기 속 빛나는 자산운용사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84개 운용사가 작년에 기록한 영업이익은 1분기(4~6월) 1286억원, 2분기 1289억원, 3분기 1428억원 등으로 늘어났다. 당기순이익은 작년 10~12월에만 1291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02억원 급증했다.

반면 국내 62개 증권사들은 줄줄이 적자를 내거나 순익 폭이 크게 줄었다. 증권업계는 작년 10~12월에만 282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직전 분기 233억원 적자에 비해 적자 규모가 급증했다. 하루 평균 주식 거래대금이 6조원 남짓으로, 손익 분기점인 9조~10조원 선에 턱없이 미치지 못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적어졌기 때문에 위탁매매 수수료를 핵심 수익원으로 삼고 있는 증권업계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다양한 투자처에 분산 투자해 적절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펀드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대형 운용사 임원은 “그동안 증권사들이 금융투자업계를 선도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선진국처럼 운용업계가 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위기 때 빛나는 자산운용사] 증시침체에 선제 대응…자산운용사들의 명품 실적
업계 현주소는…일임시장 ‘격전지’

국내 자산운용업계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운용자산(AUM)은 714조원 규모다. 채권형이 41%를 차지하며, 주식형 21%, 혼합형 6% 등의 수준이다. 이들 전통 자산이 70%를, 파생형이나 재간접형, 대체투자(AI)형 등이 나머지를 구성한다.

아시아 자산운용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11.6%에서 2011년 7.8%까지 내리막길을 걷다가 다시 회복세다. 2012년 8.1%에 이어 작년엔 8.5%까지 올랐다.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인덱스펀드의 성장이다. 공모형 인덱스펀드는 2007년 4%에 불과했지만 작년 31%로 급증했다. 중위험·중수익펀드 역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연 10%를 넘는 고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상품은 롱쇼트(저평가 주식 현물을 사고 고평가 주식을 공매도해 절대 수익을 추구)형이다. 월급처럼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는 인컴펀드도 연 5~7%의 중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많다.

운용사들 사이에선 일임시장이 주요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2011년 이후 매년 60조~70조원씩 유입되고 있다. 작년엔 펀드 자산이 338조원이었던 반면 일임자산은 365조원이 됐다. 운용사 일임자산의 76%는 보험회사 위탁 자산으로 분류됐다.

다만 공모펀드 시장에서 국내 운용사들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2.9%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호주는 109.2%로 선두이며, 미국 89.8%, 영국 46.9% 등의 순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사 주도…2020년 2000조 ‘팽창’

국내 운용업계는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신한BNPP자산운용 프랭클린템플턴투자신탁운용 등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신영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에셋플러스자산운용 등 중견 운용사들도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운용업계의 상위 5개사 집중도(CR5)는 40%다. 상위 10개사 집중도 역시 58%로 높다. 이는 영국의 시장 집중도(상위 5개사 30%, 상위 10개사 43%)보다 높은 수치다. 판매채널 확보 능력과 운용 능력을 확보한 대형사들이 시장을 주도해 왔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고령화로 연금 및 금융소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2020년엔 기관 운용자산이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래 금융시스템의 경쟁력은 축적된 연금자산의 효율적인 운용능력이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우리나라의 자산운용 시장이 2020년까지 연 7~8%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엔 2000조원 규모의 큰 시장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특히 사모펀드와 일임, 신탁 등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돋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운용업계가 2차 도약하기 위한 숙제도 있다. 우선 일임시장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수수료 경쟁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운용보수를 지나치게 낮추면 리서치 등 연구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수 있어서다.

이와 별도로 중위험 장기투자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성과보수를 현실화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 중소형 운용사 대표는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사들이 신상품 개발이나 시스템 혁신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